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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발 Aug 30. 2020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미술관

마트에 진열된 예술작품

피천득의 수필 <보스턴 심포니>에, 그는 1954년 가을부터 그 이듬해 봄까지에 걸친 연주 시즌에 금요일마다 보스턴 심포니를 들으러 가는 장면을 적었다. 삼층 꼭대기 특별석 입장권은 60센트. 기껏해야 가장 저렴한 좌석을 구입할 수 있을 뿐인데도 매주 기어코 심포니홀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란 줄을 서는 그를 상상하며 대학생 때 내 모습을 엿보곤 했다.


예술을 동경하지만 용돈은 늘 부족한 스무 살. 매달 20만 원이 계좌로 송금되면 그중 3만 원 정도는 책이랑 음악 앨범을 구입하고, 7천 원짜리 대학로 연극 한 편과 4천 원짜리 조조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티켓을 구입했다. 이렇게 용돈의 4분의 1 정도를 지적이고 예술적인 허영심을 채우는 데 쓰고 나면 다른 용도로 쓸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부모님한테 뭘 더 요구하는 성격이 못 되었다. 그해 여름방학에는 학교 앞 카페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했다. 예술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좋았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캠벨수프와 츄파춥스.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요 며칠 사이. 코로나에 얽힌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는가 싶더니, 미술관과 공연장은커녕 식당과 카페도 마음껏 다닐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몇 시간 후, 8월 30부터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는 포장 주문만 할 수 있고 식당과 주점에서는 오후 9시 전에 문을 나서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라고 했다.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쉴 틈 없이 사들이는 데도, 노트북 모니터로 좋아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찾아보는 데도 이제는 이골이 다 났는데. 내 맘은 알지도 못하면서!


읽던 책을 엎고 베개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가, 몸을 벌떡 일으켜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마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미술관(응?). 항공사 로고가 찍힌 천 가방을 들고 마트에 가기로 했다. 오늘의 쇼핑 리스트에는 앤디 워홀(Andy Warhol)과 키스 해링(Keith Haring)과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를 넣었다.



왼쪽은 살바도르 달리, 오른쪽은 달리가 스케치한 츄파춥스 로고. 두 이미지의 출처는 츄파춥스 공식 홈페이지(chupachups.com)


우선 달리부터. 막대사탕 브랜드 츄파춥스의 로고를 만든 이가 바로 달리다! 츄파춥스를 만든 엔리크 베르나트(Enrich Bernat)는 달리의 친구였다고. 베르나트는 찐득한 사탕을 손에 묻히지 않고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막대를 꽂는 사탕을 개발하고도 인기가 시들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로고를 디자인해달라는 그의 부탁을 받은 달리는 그 자리에서 1시간 만에(츄파춥스 홈페이지에는 신문지 위에 그렸다고 되어 있는데, 사진을 보면 영락없이 냅킨이다) 그림을 그려 로고를 완성했다고 한다. 데이지 꽃 모양, 노란 바탕색, 눈에 잘 띄는 두꺼운 폰트, 포장할 때 사탕 꼭대기에 오도록 한 로고 위치까지 모두 달리가 제안했다.


스페인 브랜드 츄파춥스는 농심이 수입하고 있다. 요즘 판매하는 제품은 저금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팝아트 깡통인데, 사탕 양이 많다. 나는 선명한 단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탕은 입에 물자마자, '내가 바로 찐 단맛이다!' 하고 외치며 혀에 강력하게 달라붙는달까. 크기가 작은 사탕을 묶어서 파는 '츄파춥스 미니'로 만족하기로 했다.



<캠벨수프 깡통(Campbells Soup Cans)> 32 연작 시리즈, 앤디 워홀, 1962, 뉴욕현대미술관


다음은 워홀. 팝아트(Pop Art, 대중 예술을 뜻하는 Popular Art를 줄인말)의 대가답게 자신을 예술가보다는 사업가로 부르고 싶어 했다. 1962년에 완성한 캠벨수프는 모두 직접 그렸으나 1968년에 선보인 캠벨수프는 제자들이 대량 생산 방식(실크스크린, 각각의 판마다 다른 색상을 찍어 완성한다)으로 찍어냈다. 왜 캠벨수프를 그렸냐는 질문에 워홀은, "평소 20년간 꾸준히 매일같이 수프를 먹었고 앞으로도 먹을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평범한 일상을 이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캠벨수프는 짠맛으로 악명 높다. 깡통을 따서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조리가 필요한 제품이라서 그렇다. 깡통 하나를 뜯어서 냄비나 팬에 부었다면, 빈 깡통을 꽉 채우는 양만큼의 우유나 물을 함께 부어야 한다. 캠벨수프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다양한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집에 새송이버섯 두 개가 있으니, 버섯 리소토를 만들기로 하고 '크림 오브 머시룸 수프(Cream of Mushroom Soup)'를 집었다.



<아이콘(Icon, 빛나는 아기)>, 키스 해링, 1990  


 

마지막은 해링. 뉴욕 지하철 광고판에 몰래 낙서를 남기다가 덜컥 덜미를 잡혔는데, 이 사건은 오히려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탄생과 죽음, 사랑과 성, 동성애와 에이즈, 인종차별, 전쟁, 마약에 대한 메시지를 강렬한 선과 색상으로 표현했다. 지하철에 낙서하던 시절에 가장 자주 사용하던 아이콘이었던 위의 그림은 시인 르네 리카르드(Rene Richard)가 '빛나는 아기(Radiant Baby)'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키스 해링은 "아기가 나의 로고나 서명이 된 이유는 인간 존재의 경험이 바로 아기라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단다.


해링을 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었다. 몇 년 전에 마트를 정리하면서 오래된 상품을 헐값에 파는 매대를 지나다 우연히 그의 작품이 로고처럼 찍혀 있는 양말 묶음을 발견했었다. 남성용 양말을 사서는 세 켤레는 남동생에게 주고 나머지는 내가 신는다. 한참을 헤매었으나 요즘은 마트에서 해링을 팔지 않는 듯하다. 너무 아쉽다.






왼쪽은 해링을 입은, 티라미수가 포장되길 기다리며 신난 몸뚱이. 오른쪽은 캠벨수프 깡통으로 만든 연필꽂이.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단돈 몇천 원으로 예술작품을 실컷 사들이고는 카페에 들러 티라미수를 포장해달라 부탁했다. 캠벨수프 깡통은 잘 씻어서 연필꽂이로 써야지, 마음도 먹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버섯 새우 크림 리소토를 만들어 먹고, 티라미수와 커피도 먹었다. 여전히 예술이 뭔지도 모르면서 아직도 좋아한다. 이유도 모르면서 마냥 좋기만 하다. 이렇게 마트를 돌면서나마 허영심을 채울 수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지 뭔가.


몸과 마음이 든든한 하루. 오늘 하루도 그럭저럭 잘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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