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루 중 어느 때가 가장 좋아?" "해 질 무렵! 지금처럼 노을이 막 깔리기 시작할 때." "진짜? 난 노을 보면 너무 쓸쓸하던데...."
대학생 때 친하게 지내던 동기 녀석 하나는 재미있는 질문을 자주 했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
하루 중 어느 때가 가장 좋아? 손톱을 깎을 때는 한 번에 동그랗게 모양을 내서 잘라, 아님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잘라? 어떤 영화를 좋아해? 소설 장르는 뭐 좋아해? 무슨 색깔 좋아해? 혈액형은 뭐야? 아, 또 뭐가 있었더라...?
이렇게 강아지풀처럼 간질간질한 물음에는 어떻게 대답했어야 하는 걸까? 무엇에든 너무나도 서툴던 나는 그럴싸한 대답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강을 건너며 출퇴근하던 때가 있었다.
지나고 나니 딱히 꼬집어낼 힘듦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지만 그때는 뭐가 그리 각박했던 건지. 평일 다섯 날에서 가장 행복하던 열 번의 순간은 출퇴근길에 맞닥뜨리는 강줄기에서 얻었다. 운이 좋아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노을이 짙게 깔리는 한강을 볼 수 있었다. 때마침 말랑말랑한 노래라도 듣고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이런 아름다움을 알아챌 수 있음에 감사했다.
노을 지점에서 나는 늘 녹아내린다.
마음이 벅차오를 만큼,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아름다움.
평범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이것 말고는 뭐 더 생각나는 노을에 대한 감상도 없다. 나는 우연히 노을을 만나는 그 모든 삶의 지점에서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섰다. 저 많은 색상이 아무렇게나 모이고 흩어지는 차례 안에 내가 아는 그 모든 어울림이 들어있다. 지금껏 살면서 얼마나 많은 노을을 봤을까? 어째서 단 한 번도 질리지 않았던 걸까? 앞으로는 얼마나 더 멋진 노을을 만날 수 있을까?
요즈음 다시 일주일 중 이틀은 지하철을 타고 강을 건넌다.
모든 운이 여기에 닿았나 봐, 하고 감탄할 만큼 멋진 노을을 거듭 만났다. 지하철 창밖으로는 강변에 닿은 사람들이 멈춰 서서 노을을 바라보는 장면이 내걸리곤 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공감하며 위안을 얻었다.
녀석은 하루 중 어느 때가 가장 좋다고 했더라?
아마 아침이라고 대답했나 보다. 그토록 많은 그의 질문에 답하면서 우리는 서로가 비슷하다고 결론 내리지 못했으니까. 이제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질문이 원하는 적절한 답변을 찾아 거짓말도 곧잘 하고 그럴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노을을 보며 적막한 슬픔을 느낀다는 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삶의 어떤 순간에서 노을이 그에게 슬픔으로 다가왔었는지. 지금에 와서야 문득 궁금해진다. 연애를 할라 치면 두드러기라도 날 것처럼 굴던 이십 대 초반의 나는, 그 좋은 사람과는 꼭 친구 하고 싶었다는 걸. 녀석은 과연 알았을까.
동작에서 이촌으로 넘어오는 4호선 열차 안에서 본 노을.mp4.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