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안후라이안 Oct 05. 2020

보름달은 보드란 커스터드 크림처럼

달을 쫓는 아이 1

아주 어렸을 적 우리 집은 깜깜한 시골에 있었다. 저녁 여덟 시만 되어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사방은 어두웠다. 큰길이라면, 시멘트를 겨우 바른, 어른들이 '신작로'라 부르던 도로가 고작이었다. 밤이면 아주 새까만 고요가 마을에 내려앉았다. 집집이 밝힌 은은한 주광색 알전구 불빛아롱아롱 따뜻했다.

 

유난히 밝은 달이 뜬 밤이면 사방이 환했다. 시멘트를 바른 도로와 드물게 흰 자갈 몇이 새하얗게 빛났다. 헨젤과 그레텔 남매가 흰 빵 부스러기와 하얀 자갈을 뿌려둔 길을 따라 걸으며 한밤중에도 집을 찾아 돌아올 수 있었다는 동화 속 장면을 떠올렸다. 마녀가 사는 과자 집에 가보고 싶다고 입맛을 다시며.


그런 날이면 나는 달을 쫓아 열심히 뛰었다.

"엄마, 달이 나한테서 자꾸 도망쳐!"

"그래? 그럼 더 빨리 뛰어서 잡아봐!"

내가 느리게 뛰면 달도 천천히 멀어지고, 내가 빨리 뛰면 달도 재빨리 멀어졌다. 온 우주가 그 작은 아이의 보폭에 맞춰 함께 움직여주었다. 하나로 모아 올려 묶은 말총머리를 촐싹대며 뛰던 그 작은 아이에게는 꼭 그렇게 보였다.






평소라면 추석날 초저녁부터 뜨거운 커피를 들고 혼자서 베란다로 나갔겠지. 달을 보며 이런저런 소원을 빌고 엄마가 정성 들여 가꾼 화분들도 구경했을 텐데. 엄마가 26년간 우리 집에서 가족처럼 키운 거대한 고무나무는 안녕한지. 꽃나무들은 계절을 잊지 않고 꽃을 피웠는지.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선인장과 다육이는 옹기종기 잘 자랐는지. 율마와 로즈메리는 늘 그렇듯 시원한 향기를 뿜어대는지, 가지를 손으로 쓰다듬고 코를 킁킁대며 커피를 홀짝였겠지.


그러고 있으면 엄마가 과일을 먹자며 부를 텐데. 배부른데 과일을 이렇게나 많이 주냐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고도 접시 여러 개가 바닥날 때까지 포크질을 했겠지.

"아빠, 기억 나? 어릴 때 아빠가 재미있는 얘기라며 해줬던 거. 바보 삼 형제가 달 보면서 했던 그 대화 말이야."

이렇게 물었어야 했는데. 가마니한테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는 유의 시시한 농담밖에 할 줄 모르는 아빠는, 그 옛날처럼 또 시시껄렁한 바보 삼 형제 얘기를 해줬을 텐데. 맏형이 두 동생에게, '둘이가 또이같다' 했다는 마지막 장면만 기억나니 아쉽기 그지없다.


서울에 남아 보통 때의 추석날을 생각하자니 어쩐지 쓸쓸한 듯 고즈넉하고, 헛헛한 듯 넉넉했다.






추석날 달려간 공원에서 만난 보름달. 사진으로는 커스터드 크림처럼 보이지 않아서 속상하다.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달이 내게서 도망간다고 하면, 더 빨리 뛰라고 부추기던 엄마는 추석 밤마다 달님한테 소원을 빌자고 했다. 빌고 싶은 소원은 언제나 차고 넘쳤다. 결코 기울지 않는다는 게 달과 나의 차이점이었다. 달이 소원을 들어주는 데 그다지 소질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도, 나는 계속해서 추석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이번 추석날 저녁에도 달을 보겠다며 마스크를 쓰고서 동네 공원으로 내달렸다. 잔뜩 몰려온 비구름이 보름달을 숨겼다 내주었다 하며 약을 올렸다. 정수리 가까이까지 올려 묶은 머리카락이 보폭에 맞춰 목을 때렸다. 나는 그 옛날의 작은 아이가 되어 달을 쫓았다. 추석 보름달은 두툼한 구름 속에서도 커스터드 크림처럼 보드랍게 빛났다. 어릴 때 쫓던 그 달이 분명했다. 나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거리를 좁히는 일이 없었으니까. 줄어들 줄 모르는 소원을 다 빌고 있자니 숨이 턱까지 가득 차올랐다.



한 달 전에 찍어둔 보름달. 이사하면 그리워질 공원 산책길.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이전 12화 퇴근길 노을 맛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