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행하며 돌아다니던 트위터 '짤'의 내용이다. 저 상황을 직접 목격한 사람에게 건너 들었다는 부연설명도 짤에 포함되어 있다. '아름답다'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일(글) 얘기'로 치부했다는 점에서 이 대화가 실제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살짝 의심이 든다. '아름답다'라는 형용사 하나를 이야기하기 위해 김동인은 <광염 소나타>라는 단편소설 한 편을 써 내려갔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5~6년 뒤에는 <광화사>까지 써버리지 않았던가.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묘사에 묘사를 더해 구체적으로 구축해나가는 것. 그게 문학이니까.
트춘문예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나는 이 짤을 좋아한다. 어딘지 풋풋하고 간질간질한 '갬성'이 있어서다.
작년 이맘때쯤. 종로 3가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친구랑 다가올 주말 약속 장소를 정하고 있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친구가 물었다. 종묘 입구를 지나치는 차창 밖으로는 때마침 노을이 보였다. 얼른 사진을 찍었다. '저 노을이 먹고 싶어.'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언뜻 스치는 생각일 뿐이었으나, 미쳤네, 미쳤어, 하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었다. 이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감성은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걸까? 사진첩을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 사진을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
종묘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 버스 안 불빛이 아른거리며 그날의 기분을 되살린다. (c) 2019.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보글보글 하는 걸 보고 있음. 마음이 보글보글해졌다. 니 생각이 나서(ㅋㅋㅋㅋ)."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더니. 친구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어느 날 늦은 밤에는 오랜 친구가 감자를 조리며 동영상을 보내왔다. 마음이 보글보글하다는 친구 얘길 듣고는 내 기분까지 함께 보글보글해지던 밤이었다.
왼쪽은 친구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이고 오른쪽은 친구가 보내준 완성된 감자조림. 맛있겠다. (c) 2020. 아이후(ihoo) & 친구 all rights reserved.
"요새 어찌 지내요? 전 마른 흙처럼 지내고 있어요."
며칠 전에는 또 다른 친구가 이런 연락을 해왔다. 요즘 일이 많아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걸까, 아님 마음이 쓸쓸하게 메말랐다는 뜻일까? 안 돼, 안 돼요! 마른 흙이라니.... 얘기를 조금 더 들어봐야겠다. 한데 메시지에 담긴 표현이 딱 그 친구 스타일이다. 이런 시적인 표현이라니!
나는 기획하고 글 쓰는 사람으로,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우리는 일로 만났지만 친구가 되었다. 글 감성과 그림 감성. 서로의 감성을 신기해하고 이해하며 우리는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
친구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좌)와 친구가 엽서에 그려준 그림(우). (c) 2020. 아이후(ihoo) & olockvoloc all rights reserved.
"밤꽃 냄새가 기가 막히네!"
업무차 파주에 들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내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는 인쇄소 이사님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요즘엔 밤꽃이 피는구나! 야외로 나가지는 못하지만 지금 한창 어느 꽃이 절정인지는 건너 건너 들을 수 있었다. 한 번도 눈으로 직접 본 적 없는 밤꽃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의 경험을 직접 공유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요즘처럼 만나기 어려운 때에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자잘한 감성을 공유하는 것으로도, 이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돈 대신 '갬성'을 '플렉스'하기로 한다.
※기사 쓰던 버릇이 남아 덧붙이는 용어 설명
-짤: 온라인에서 글을 올릴 때 '잘림 방지'용으로 함께 첨부하던 이미지 파일을 뜻하던 걸 지금은 '짤'로 줄여 사용한다. 지금은 온라인 상에 떠도는 거의 모든 이미지를 일컫는 말로 쓴다.
-트춘문예: '트위터'와 '신춘문예'의 합성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직접 겪은 것처럼 꾸며낸 듯한 글을 일컫는다. 비슷한 예로 '네이트 판'의 거짓 글을 뜻하는 '판춘문예'가 있다.
-갬성: '감성'을 살짝 비꼬는 요즘 유행어. '인스타그램 갬성', '싸이월드 갬성'처럼 온라인 sns 채널 특유의 분위기를 얘기할 때 주로 사용한다.
-플렉스: 영어 단어 'flex(몸을 풀다, 구부리다)'에서 유래한 말. 자신의 부나 귀중품을 과시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1990년대 힙합 문화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