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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방장 Dec 02. 2023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ep16. 추천 도서 <꿈꾸는 책들의 도시> 발터 뫼르스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젊은 공룡 미텐메츠가 대부로부터 신비한 원고 한 뭉치를 유산으로 받아 실종된 저자를 찾아 부흐하임으로 떠나 함정에 빠져 지하 세계로 끌려가 마침내 가장 깊숙한 그림자의 성까지 들어가게 되는 여정을 묘사한 장편소설이다. 


과정 속에서 슬럼프를 겪고 있거나 차분하게 소설을 읽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용기를 느끼고 견뎌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간간이 하는 아르바이트는 김밥집 홀 서빙이다. 김밥집에서 나는 김밥을 말고 쓸고 포장을 잘하는 기술자다. 어제도 김밥집에서 14시간의 노동을 했다. 오빠 내외가 부모님을 해외여행 보내셨는데 비용지원 대신 나는 몸을 때워 엄마네 김밥집에서 하루 일한 것이다. 새벽 5시 반에 첫 전철을 탔다. 새벽 외출할 때마다 느끼지만 부지런히 사는 사람이 정말 많다. 30분 동안 서서 갔다. 벌써 지쳤다. 김밥집 도착하자마자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김밥을 하염없이 싸고 포장하고 마지막 배달 다녀오니 9시다. 점심 장사 준비하고 정신없는 점심 장사가 끝나자, 허리가 욱신거리고 발바닥이 불에 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가 되었지만,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숨 막힌 채 끊기지 않고 한둘씩 들어오는 손님을 받다 보니 앉을 시간 없이 저녁 장사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두 손으로 말았던 김밥이 백 줄은 넘을 것이다.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한계를 느꼈다. 중간중간 마음마저 힘들어질 때 신기하게도 뇌리에 <꿈꾸는 책들의 도시> 속 장면이 떠올랐다.

위로도 아래로도 갈 수 없이 매달려 있는 주인공에게 호문콜로스가 한 말이 있다. 

 "그냥 계속 기어올라가는 거다. 마치 소설을 쓸 때처럼. 처음에 아주 비약적으로 한 장면을 쓰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러다가 언젠가 네가 피곤해져서 뒤를 돌아보면 아직 겨우 절반밖에는 쓰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앞을 바라보면 아직도 절반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때 만약 용기를 잃으면 너는 실패하고 만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일을 끝내기는 어렵다."


어떻게든 견뎌내려고 머릿속에서 과거 경험을 훑어 뭐든 견딜 수 있게 끄집어낸 게 분명하다. 
견뎌내다 보니 바쁜 점심시간에 당황하지 않고 치우고, 주문하고, 다음 손님 안내하고, 김밥 싸서 나가고, 주방 음식 체크하고, 계산하고……하는 내 모습까지 발견한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면 맥락이 보이는구나. 카페를 운영하면서, 교육 콘텐츠를 만들면서 뒤돌아보면 겨우?라는 기분이 들고 앞을 바라보면 끝이 안 보일 때가 있다. 분명 과정에 있음을, 맥락이 보일 때까지 쌓아가는 것임을 문득 깨달았다. 

김밥집에서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나의 일상을 다시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을 선물 받았다. 앞이 안 보일 때는 축적 중이다. 그냥 눈앞에 일을 하면 된다. 끝으로 <꿈꾸는 책들의 도시> 속 첫 문장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끝으로 도서 <꿈꾸는 책들의 도시> 속 인상 깊은 내용을 적어본다.

 

"소리를 질러봤자 지금은 도움이 안 된다." 호문콜로스가 말했다. "차라리 네 힘을 아껴라! 그게 필요할 거다."
"나는 밑으로 다시 내려갈 겁니다." 나는 고집을 부리며 말했다. 
"그건 너에게 권하고 싶지 않구나. 나도 밑으로 내려갈 때는 다른 길을 택한다. 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보다 훨씬 쉬운지 아느냐? 그건 우리 눈이 앞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발을 디디는 그 밑을 보지 않으니까."


"거기 뭐가 있나요?"
"모든 위험 가운데 가장 큰 위험이 있다."
"모든 위험 가운데 가장 큰 위험이라니요? 여기요? 어디예요? 그게 어디 있습니까?"
나는 공포에 사로 잡혀 혹시 굵직한 뱀이나 독을 품은 터널 거미가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네 안에 숨어 있다." 호문콜로스가 말했다. "공포 말이다."
그랬다. 나는 무시무시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치 몸이 마비된 듯했다. 


"이제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호문콜로스가 말했다. "안 그러면 너는 끝장나고 말 테니까."
"그러면 제발,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계속 기어올라가는 거다. 마치 소설을 쓸 때처럼. 처음에 아주 비약적으로 한 장면을 쓰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러다가 언젠가 네가 피곤해져서 뒤를 돌아보면 아직 겨우 절반밖에는 쓰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앞을 바라보면 아직도 절반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때 만약 용기를 잃으면 너는 실패하고 만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일을 끝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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