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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살에 토익을 보다

나의 엉터리 영어 이야기

by 백기행 Jul 26. 2023


2023년 5월 23일부터 6월 23일까지 토익 공부를 하고 첫 시험을 쳤다.


39살 (만으로 38살) 먹은 아재가 20대들의 전유물인 토익은 왜 쳤는가?



나는 유독 영어에 약한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엄마가 동네에 영어공부방에 보냈다. 그룹스터디로 진행하는 '윤선생 파닉스 영어'를 배웠는데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선물을 받기 위해 영어 단어를 외웠다.

처음에는 여자애들 3명과 한조로 공부하여 부드러운 분위기였으나, 1년 뒤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남자아이 두 명과 공부하게 되었고 그 아이들과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까지 하여 그만뒀다.


그래도 이때 읽고 쓰는 것을 배워서였는지 중1 중간고사에서 영어는 100점이었다.



그런데 중2 때 전학을 가면서 영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과서는 1학년때는 문법을 안 배우고 2학년 때 배우기 시작하는데, 전학을 온 학교에서는 이미 1학년때 문법을 배웠던 것이다.  

교과서 출판사가 달랐다.


나는 3인칭 주어가 있을 때 단수 복수 동사도 구별하지 못했다. S가 없는데 왜 복수동사인지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때 영어뿐만 아니라 주변환경이 바뀌어서 공부 적응에 힘들었던 것 같다.



중2 중간고사를 망치고 아버지는 아는 분이 운영하는 단과학원에 보냈다. 텃세가 심했단 건지 애민 했던 건지 하루 만에 못 가겠다고 때를 썼다.


결국 아버지는 나를 종합학원에 보냈다.  청산학원이라는 서울 강동구에서는 점유율 1위의 학원이었다.


종합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더 어려웠다. 질문하기도 어렵고 진도는 진도대로 나가고.


사실 이때 단어 열심히 외우고 복습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락과 만화가 좋아서 공부는 안 하고 아버지가 무서워서 출석만 찍었던 거 같다.

매일 만화책 보고 그림 그리는 게 낙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학원 기본서가 '성문기본'이라

나는 영어에 진절머리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도 성문영어를 보면 법학교과서를 읽는 기분이다. 차라리 민법 곽서가 더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아무튼 고2 때까지 영어는 내 내신을 깎는 주범이었다.  아무리 해도 70점대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문과인데 영어를 못하다니.  (국어 수학 사탐 과목은 90점 이상)


수능모의고사에서도 언어영역이나 사회탐구영역은 공부를 하든 안 하든 1, 2등급은 나오는데 영어는 4,5 등급 었다.



이대로 대학을 못가나 싶었다.  

영어는 미국 말인데 고작 미국말 때문에 내 인생이 나락으로 가는 것인가? 생각했다.


이때 엉터리 영어 인생에서 고마운 두 분을 만난다.



한분은 종합학원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나를 불쌍하게 여기셨는지 학원 수업시간 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나와서 개인과외를 해주셨다. 돈도 안 받도.


숙제는 리딩튜터라는 책을 사서 지문을 노트 한 면에 적고 다른 한 면에는 한글로 해석하여 쓰는 것었다. 답지는 보지 않고.


나중에 어떤 여자애가 왜 쟤만 따로 봐주냐고 트집을 잡아서 (아직도 그 여자애의 표정과 말투 상황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자연스럽게 그만두었지만 몇 달 동안 영어독해실력이 향상되었다.



또 한 사람은 고2를 마치고 고3 되기 전 겨울방학 때 머리를 식힐 겸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조폭 같은 거구의 남성이 농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쫄려서 "알겠습니다." 하고 눈치를 보며 같이 운동을 했다.


운동을 마치고 그 형이 나의 신상정보를 캐기 시작했다.


나는 고3 올라가는데 영어 병신이라 힘들다고 고해성사했다.


그러자 자신의 학력(상명대 법학과)을 밝히고 자신의 성공한 영어 공부 경험담을 말해줬다.


나는 처음에 깡패 같은 사람이라 무서웠는데 법대라는 말을 듣자 사람이 달라 보였다. 상명대는 처음 들아봤지만.


그 형은 원래 유도 선수였는데 운동을 하다 부상을 입고 어쩔 수 없어 수능공부를 시작했는데

영어는 답이 없었고 그래서 단어장만 일단 계속 외웠는데 그게 도움이 되었고 수능도 잘 봤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때 무협지에 심취했던 터라 나는 마치 기연을 만난 듯했다. 천우신조 선리기연 등등


무림고수의 지도에 따라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 다니던 청산학원을 끊고 단어장 한 권을 구입하여 독파하기 시작한다.


겨울방학 폐관수련의 시작이었다.  신기하게 단어를 와우니 정확히 해석을 못해도 독해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성문영어 좆 까! 난 문법필요 없다. 사파무공의 극강함을 보여주마!



그러다 여름방학 무렵 서점에서 <무림비급>을  구하게 된다.


어떤 학원에서 특강으로 한 수업을 테이프 한 권에 녹음하였고 책은 그 테이프를 들으며 공부하는 것인데 지금으로 치면 인강음성파일 정도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주제를 고르시 오는 앞문장과 끝문장만 읽는다 던가 하는 일종의 꼼수를 날려주는 책이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인강도 보고 유튜브에 영어시험 관련 고급 정보도 무료배포 하고 있지만

그 당시 우리 집은 인터넷도 안되었다. 인강은커녕.


고3이 되면 누구나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었다는데 나는 독학으로 하다 보니 그 책이 너무 신기했다. 시중의 모의고사집을 사서 그 방법이 통하는지 확인해 보니 아뿔싸 모두 통하는 것이었다.


와 나도 수능에서 영어 대박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결국 수능에서 영어는 2등급을 받았다. 듣기는 다 맞고 문법 독해에서 3문제 틀렸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농구하는 법학과 형님보다 더 좋은(?) 인서울 D대학 법학과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내 인생에 영어는 없었다.



매일매일 재미있게 놀았다. 사실 대학교1학년 때 강남에 이익훈어학원에 한 달 정도 갔는데 공부에 집중은 안 했고 같이 공부하러 가는 여자동기랑 어울리는 게 좋아서 다녔던 것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여름방학 때 사귀던 여자친구와 학교에서 특강으로 토익을 개설하여 신청했다가

첫날 전치사 접속사 비교설명에 주화입마에 빠져 당일 그만두었다.



군 전역 후 2008년 공인노무사 시험을 준비했는데 이때 영어시험이 공인영어가 아니고 자체 객관식 시험이었다. 토익을 볼 일이 없었다.

노무사 시험을 떨어지고  2010년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면서 마찬가지로 9급 영어만 공부했다.


수능영어도 다시 외우고 문법도 외우고 그저 외울 뿐이었다. 아 왜 또 영어를 공부해야 하지? 그저 암담했다.




다행히 공무원은 합격했는데 그때 영어는 60점이었다. 다른 과목으로 커버한 것.

노력대비 점수는 처참했지만 합격했는데 영어가 뭐가 중요한가.



아무튼 2011년 공무원 합격 후 영어는 내 인생에 진짜 없었다.  아니 없길 바랐다.



놀고 일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육아하고.


그러다 2023년 우연히 유튜브에서 최왕국의 영어 말하기 동영상을 보게 되고 두 달 정도 따라 말하기를 해봤다.


영어에 흥미가 생기니 활용방법을 찾아보다 국외단기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6개월 간 외국 기관에 가서 우리나라 정책에 도움이 돠는 선진화된 정책을 배워오는 것이었다.


어학자격 요건이 토익은 700 이상 정도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준비가 더 복잡하고 많지만.



아,  그럼 일단 토익을 보자. 그래서 한 달 정도 출퇴근 시간, 퇴근 후 하루 잠을 4시간씩 자면서 공부했다.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난 20대 때 왜 토익을 공부 안 했나 후회되었다.  아니 영어만 꾸준히 봤어도.


토익 공부법을 찾아가며 1000 제니 기초니 기본이니 하는 책들을 사서 풀었다. 외웠다.


아무튼 오늘 첫 시험을 봤다.  9급 시험 치고 나올 때처럼 온몸이 아프고 두통이 왔다. 200문제.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문제 풀면서 뇌가 타는 기분.



시험장에는 20대 젊은 학생들이 많더라. 젊음이 부럽고 난 저 때 뭐 했나 했다.  


막판에 마킹하지 말라는데 계속해서 부정행위로 답안지 뺏긴 남학생이 안타까웠다.



RC는 한 달 정도 했는데 LC는 겨우 일주일 정도 해서 거의 찍다시피 했다.


 


LC 파트 1은 괜찮았고 파트 2는 잘 안 들리고 뭔 말인지 모르겠었다. 내가 괜한 짓을 했구나 싶었다. 파트 1, 2는 풀면서 마킹했다.


파본검사, 파트 1, 파트 2 설명 때 파트 5를 풀어야 한다 해서 나름 풀어봤다.


파트 3, 4는 듣기가 아니라 독해라는데 안 들리는 건 안 들리고 감으로 찍어나갔다.


10시 10분부터 10시 50분까지 문제 풀고 3분간 파트 3,4 마킹을 했다.



10시 58분부터 11시 50분까지 파트 7 2중 3중 문제부터 풀었다. 그다음 한 개짜리를 처리하고


15분 남았다고 방송 나올 때 11시 50분부터 12시 5분까지 파트 6을 풀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에 파트 5를 풀었다. 그리고 5분 남기고 마킹.



마킹도 상당히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기사문은 b로 찍으려고 했는데 2문제 짜리는 포기 안 하고 읽어보니 답이 쉽게 나와서 마킹을 수정했다. 3문제인가 4문제가 띨 린 문제는 찍었다.


공무원 공부할 때는 마킹연습도 했는데. 무려 12년 전이라 시험감도 떨어진 듯.



결론은 속도감 있게 풀려니 많이 어려웠다. 다하고 나니까 진 빠지고 머리 아프고 늙으니 체력도 달리고. 단어 더 많이 외우고 직독직해 연습 더하고 듣기를 열심히 준비하면 700은 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영어는 여행 가서 프리토킹하는 것인데, 왜 아직도 단어장을 외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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