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퐝메리 Nov 25. 2020

너 같은 사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3년만이었다. 어색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가 좋아하는걸 너무 잘 알았다. "그... 무슨 창이지?" 친구가 밥 먹다말고 고개를 갸웃거렸고 내가 재빨리 대답했다. "테드 창?" "맞아 맞아 테드 창"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너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겠지


그러니까, 그런거다. 테드 창이 작가라는 걸 알고, 그것도 SF작가라는걸 서로 알고. '그 무슨 창이지...?' 라고 두루뭉술 물었을때 그 친구가 말하는 '무슨 창' 이 '테드 창' 이라는걸 간파해낼 수 있는 사이가 얼마나 될까. 


물론 테드 창은 유명한 SF작가지만. 그 사람이 SF작가라는걸 알고, 모두 그 사람의 소설을 읽었고. '무슨 창이지?' 를 물었을때 수많은 창으로 끝나는 말을 뒤로하고 '테드 창' 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내뱉는 사이가, 과연 얘 말고 내 인생에 또 있을까.




모든 취향에서 완벽하게 들어맞는 친구.


내가 읽는 모든 책, 모든 영화, 모든 음악... 굳이 '이런 작가가 있는데' 혹은 '이런 영화가 있는데' 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친구였다.


'아직도 김연수 좋아해?' 라고 물으면 김연수가 누구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책과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김초희 전작도 봤어?' 하고 물으면 김초희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그 감독의 단편영화의 제목과 배우가 술술 나오는 사이.


척하면 척. 이심전심. 염화미소.




글만 보고도 너인줄 알겠더라


서로의 오해로 3년간 보지 못했다. 친구는 내게 오랜만에 연락한 계기를 그렇게 말했다. 영화를 보고 좋아서 검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써놓은 글이 나오더라고. 나인거 같아서 프로필을 보는데 <메리대구공방전>을 언급하길래 확신했다고. "글만 보고도 어떤 사람인줄 알아채릴 수 있을까?" 생각했고, 자기가 좋아하는걸 나도 계속 보고있을거란 생각이 들자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나도 사실은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떤 영화가 좋으면 친구가 좋아하겠네 싶었다. 어떤 책이 너무 좋으면 친구가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을텐데 싶었다. 그리고 어느날에는 그런 친구를 잃어버려서... '이제 평생 나는 이런 얘기를 누구랑 하면서 살지' 하며 마음이 무너져내린적이 있었다.




조조래빗을 봐, 그게 올해의 영화였어.


이번 만남을 통해 이 친구가 내 인생에 대체불가능한 존재임을, 다시한번 여실히 깨달았다. 헤어지면서 친구는 내가 추천하는 <조조래빗>을 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제 '좋더라’ 는 화답을 전해왔다. 나는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이제 다시. 나는 너와 좋아하는 영화를 붙잡고 오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구나.





서로가 좋아하는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 너같은 사람. 내게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 앞으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취향을 공유하게 될까. . ‘네가 좋아하는 모든걸 내가 알지’ 나는 벅찬 마음이 들어 창밖을 한참동안 내다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창피하게, 라고 쓰고 겁나 멋있네, 라고 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