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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메리 Feb 21. 2021

짜잔- 이제 말을 놓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너, 존댓말 하니까 이상하다


새로 사귄 친구 G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성공이군. 나에게는 좀 고약한 습관이 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대충 뭉개면서 말을 놓는 것이다. 


물론 야야 거리지는 않는다. 그냥 별명을 부르고 싶은데. 그러려면 존댓말을 하기에는 어색해서. 별명을 부른 뒤 반말을 덧붙이곤 한다.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술을 핑계로 G에게 “한 살 차이면 친구잖아", "반갑다 친구야" 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나, 바뜨... 돌아오는 것은 G의 냉정한 반응이었다. G는 싸늘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 그러다 맞겠다'


음메, 기죽어...


쉽지 않겠군. 그렇지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말 놓으면 안 돼... 요?" 틈틈이 들이댔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반말과 존댓말을 섞으며 말했다.


그냥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였다. 존댓말? 그거 우리나라에만 있는 거잖아요. 나이 차이가 좀 나도, 친구로 편하게 대하고 싶다고요. 그렇지만 나도 유교 걸이라 존댓말을 썼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한번 존댓말로 시작한 관계가 반말로 바뀌는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G 가 어느 순간 그런 말을 했다. "너 존댓말 쓰니까 이상하다". 아 드디어... 나는 속으로 예쓰를 외쳤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치? 그냥 말 놓으라니까~"





금세 도착하겠네요(1:43), 에서 도착했어?(10:56) 의 카톡 메시지 사이까지. 9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만나서 전시를 봤고, 밥을 먹었다. 술도 한잔하고, 차까지 마셨다. 중간중간 은근슬쩍 말을 놓았지만 대개는 존댓말을 썼다. 그렇지만 헤어지고 난 뒤 G가 먼저 반말로 카톡을 해오자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으아... 드디어! 드디어 말을 놓는 사이가 되었군요! 인간관계 관성의 법칙에 따라, 반말을 쓴 사이는 이제 존댓말로 되돌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넌 왜 이렇게 반말에 집착하냐?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 역시나 내가 말을 놓는 - H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냥 '그러면 더 친해질 수 있잖아' 라고 대답했다.


뭐해? 라고 물는건 자연스럽지만, 뭐하세요?는 좀 어색하잖아. 어디야? 라고 물으면 궁금해서 묻는 거 같지만, 어디세요? 라고 물으면 좀 취조하는 거 같고. 영화 보러 가자, 라고 하면 쉽게 약속을 잡을 수 있지만 영화 보러 가실래요? 는 어쩐지 부담스럽지 않아?


H는 됐어 핑계대지마, 라며 구박을 했다. 그렇지만 내가 '다시 존댓말 쓸까?' 라고 물었을 때는 '아니, 그냥 까불어' 라고 대답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박미선의 이 말을 듣고 나는 더욱 용기(?)를 얻었다. 아 맞아. 윗 사람들한테 계속 뭉개면서 은근슬쩍 말을 놓아야지. 그렇게 편하게 대하고. 점점  친해지고. 나중엔 인간  인간으로서 그들을 귀여워해줘야지. 아 안녕...하세요, 하면서 뚝딱이로 시작했다가. '어~ 00(별명) 왔어?' 가 되기까지. 이 코로나 시국에 또 한명을 친구로 얻어서 기쁘다. 반갑다 친구야. 그러게 진작 말 놓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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