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영화관 - 서울 (12)
자체휴강 시네마에서 <이태원>을 관람했다. <이태원>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태원에서 살아온 세 여성 삼숙, 나키, 영화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그들이 맨 처음 자리를 잡았던 그 시절의 이태원과 지금의 이태원은 다른듯하면서도 닮았다. 여러 문화가 여전히 이태원을 중심으로 어우러지고 있으니까. 미군 달러가 지배하던 도시에서,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힙한 도시 중 하나가 된 이태원. 이태원에서 그랜드 올 아프리라는 이름의 컨트리클럽을 40년째 이어오고 있는 삼숙은 말한다. “외국인들은 오래된 역사적인 걸 좋아해. 새로운 게 아니라.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다 밀어버리고 새로 만들려고만 하잖아.”
삼숙의 말처럼 도시를 새롭게 탈바꿈시키려는 시도는 계속 있어왔고, 그 과정 속에서 도시 안에 깃든 개인의 역사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양 지워졌다. 나키와 영화처럼 성산업에 종사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더욱. 왜 도시는 개인의 목소리를 지우려 하는가. 단순히 그들이 종사했던 직업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가진 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때문에, 가진 게 없는 그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고 마치 ‘없는 존재’처럼 취급되었을 것이다. 엄연히 바로 이곳, 이태원에 존재하며 살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이태원>은 그러한 이들의 목소리를 처연하지 않게 잘 담아냈다. 관람하기 전에는 슬픈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그런 생각들을 반성하게 됐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선택한 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책임지며 살아간다. 노년이 된 지금 그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간다. 클럽을 운영하는 삼숙은 조금 나은 편이지만, 나키나 영화는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게 훨씬 한정적이다. 나키가 묵묵히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며 골목골목에 얼마나 많은 나키들의 발자국이 있을까 생각했다. 비단 이태원만은 아니리라. 지워진 존재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많은 골목에 스며있을 것이고, 그러한 목소리가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함으로써, 우리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