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편의점에 있습니다 - 제36화
서비스업에 종사하다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 세상은 넓고, 참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신기함 보다는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간혹이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 가스 라이팅을 시전 하는 손님들이 있다. 본인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워 역으로 화를 내 사과를 하게 만드는 사람들. 아마 서비스업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겪어본 유형일 테다. 이런 유형에게는 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하고 사과하고 돌려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절대 내 쪽으로 당겨지지 않을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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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의 행사는 편의점의 큰 대목 행사다. 행사가 있는 달에는 행사를 앞두고 해당 행사에 어울리는 행사 상품들을 입구 쪽의 매대에 따로 진열하곤 한다. 잘 보이는 곳에 둬야 하나라도 더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밸런타인데이 막바지 행사 때였다. 아이를 안은 손님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때마침 입구 쪽에 있는 원두커피 머신에서 다른 손님이 커피를 뽑고 있었던지라, 들어오는 입구가 몹시 협소했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나 불안감은 적중한다.
아이를 안은 손님이 들어오며 행사 매대를 쳤고 진열되어있던 페레로로쉐 초콜릿 통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깨졌다. 손님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장으로 들어왔고 나는 깨진 페레로로쉐 통을 주으며 손님에게 말했다.
“저기, 손님. 이거 통이 깨졌는데요.”
“그래서요? 왜 여기다 진열을 해놔요? 이렇게 좁은 입구에 진열한 게 잘못 아닌가요? 그리고 커피 뽑는 저 사람 때문에 안 그래도 좁은데 들어오기 힘들어서 떨어진 거라고요. 지금 저보고 배상하라는 거예요? 본인이 잘못 진열해놓고 뭘 어쩌라고요!”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을 듣고 있자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매대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누군가 건드리지 않는 이상 물건이 떨어질 수가 없다. 보통의 경우라면 물건이 파손되었으면 미안하다는 사과를 먼저 하게 마련인데, 이 손님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졸지에 가만히 있던 커피 손님까지 동시에 싸잡아 가스 라이팅을 당했다. 커피 손님과 나는 둘 다 너무도 당당한 그 손님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먼저 당황함을 털고 정신을 차린 건 나였다.
나는 분명히 배상하라는 말을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 통이 깨졌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내가 깬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 손님은 타인의 잘못으로 돌리고 가스 라이팅을 하는가. 오랜 서비스업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여기서 더 말을 꺼내봤자 나만 스트레스받을 게 뻔하고, 좋은 결과가 올리도 없었다. 그래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더 이상의 말없이 깨진 통을 바라보며 이걸 어째야 하나 한숨을 쉬고 있는데, 가스 라이팅 손님은 마치 진열을 잘못한 내 탓이라는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이 따발총처럼 말을 계속 쏟아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뭘 어쩌겠는가.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손님에게 배상하라고 안 할 테니까 그냥 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신의 기분이 나빠졌다며 나에게 욕을 퍼부었다. 내 잘못도 아닌데, 결국 나는 사과해야 했고 그 손님이 돌아간 후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다.
깨진 페레로로쉐통만큼이나 내 멘탈도 같이 깨져버렸다. 그날 밤, 밤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가스 라이팅을 당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이런 식의 삶이라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은 채 나는 영원히 밤이 지속되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