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면 몰라요

오늘도 편의점에 있습니다 - 제37화

by 석류


물건이나 담배 이름을 전부 줄여서 말하는 줄임말 손님이 있다. 항상 모든 물건을 다 줄여서 말하기 때문에 대체 무슨 물건을 찾는 건지, 달라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난감한데 막상 찾고 나면 ‘아, 이걸 말한 거였구나.’ 싶어서 허탈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줄임말 손님의 줄임말에 익숙해진 건지 이제는 덜 헤매고 상품들을 빠르게 찾아낸다는 게 하나의 위안이다.



줄임말 손님보다 더 높은 난이도의 손님이 있는데, 바로 이거 말고 저거 손님이다. 풀네임으로 쓰면 길기 때문에, 편의를 위해 이저 손님이라고 쓰도록 하겠다. 이저 손님들의 특징이 있다. 들어오면 삿대질을 하듯이 손가락을 쳐들고, “담배 하나 줘.”라고 반말을 한다. 어떤 담배인지 이름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공통점이다.



“어떤 담배로 드릴까요?”

“저거, 저걸로. 파란 거 있잖아.”



파란색이 들어간 담배만 해도 수십 종. 혹시 에쎄일까 싶어서 에쎄 프라임을 내밀면, 바로 퇴짜다.


“아니, 그거 말고 파란 거.”



대체 어떤 파란색을 말하는 것인가. 나는 혼돈에 빠진다. 여러 종의 담배를 내밀고서야 이저 손님의 담배가 무엇인지 비로소 파악하게 된다. 그가 말한 담배는 파란색이 아닌 초록색이다. 대체 왜 초록색을 파란색이라고 말하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제 계산할 차례다. 계산을 하려고 하면, 이저 손님은 태클을 건다. 담뱃갑에 그려진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다.



“이거 말고 저걸로 줘.”



그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아이가 우는 표정을 한 그림이 그려진 담뱃갑이 진열되어있다. 내가 내민 것에는 발기부전 그림이 그려져 있고. 피는 것 자체가 어차피 건강에 해로운 행위임에도,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구강암 그림이나, 발기부전은 기분이 나쁘다나 뭐라나. 그럴 거면 담배 케이스를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그 말을 속으로만 생각할 뿐 내뱉지 못한다. 아이가 우는 그림은 왜 괜찮다고 생각할까? 담배로 인해 아이가 우는 건 괜찮다는 걸까. 이러한 이저 손님들은 매일 같이 오고, 그때마다 서로 다른 종의 담배들을 사 간다.



나는 단 한 번도 이저 손님들이 자신이 피는 종의 담배 이름을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왜 자신이 피는 담배 이름을 발음하지 않을까 궁금하지만, 나는 묻지 않는다. 이미 담배를 찾는 단계에서 진이 빠진 상태라 빨리 계산을 하고 잠시나마 숨 돌릴 시간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저 손님은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로 매장에 찾아오고 그때마다 나는 퀘스트를 처리하듯 그들의 담배를 찾는 일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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