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그리고 51년 후

오늘도 편의점에 있습니다 - 제43화

by 석류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의 젊은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타올랐다.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던 말을 남겼던 전태일 열사. 그로부터 51년 후의 상황을 그가 본다면 눈물 흘리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노동 악법은 무수히 많은 형태로 존재하고 있고, 근로 기준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태반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동질감이 느껴진다. 나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에 속해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한다.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의 자리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버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몸이 아파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이들에게 ‘아프면 쉬라.’는 말은 영영 일을 하지 않고 쉬라는 말과도 같다.



몸살로 온 몸이 불덩이였던 적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아무리 아파도 일을 빠져본 적이 없다. 일을 한 번만 빠져도 생계에 적지 않은 타격이 가는데, 어떻게 빠지겠는가.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나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 일을 했고, 버텼다.



낮은 임금 탓에 미래를 대비하기도 어렵고, 겨우겨우 한 달을 나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매일을 보낸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안정한 고용만큼이나 불안의 씨앗들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 이 불안함의 씨앗들처럼.



우리는 거창하게 살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최소한의 노동환경을 보장받으며 사람답게 일하며 살고 싶다.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노동자들이 스러져 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골고루 빛이 닿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노동이 어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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