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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antasma

Fantasma 마흔네 번째 이야기, 비

by 석류
비 오는 날을 나는 정말 싫어한다. 습기 찬 느낌과 축축한 느낌도 느낌이지만, 어느 해 여름 시작점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걸 나는 몸상태로 직감하곤 했다. 유독 몸이 아리거나 아파오면 거짓말 같게도 비가 오곤 했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에는 너의 걱정도 함께 날아왔다. 비 온다고, 괜찮냐고. 굳이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말에 담긴 너의 따뜻함을. 비 오는 날이면 나는 그 날의 기억과, 그리고 네가 떠올랐다. 걸어 다니는 먹구름처럼 비를 몰고 다니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걱정해주던 너. 나는 그런 네가 좋았다. 비는 싫어도 비와 함께 찾아오던 너는 좋았다. 만추쯤이었던가. 저녁을 먹고 나와 빗줄기가 약해지길 기다리며, 식당의 처마 아래에 함께 앉아있는데 그날따라 기분이 되게 묘했다. 나중에 나는 그 기분이 무엇인지 깨달았지만 그 순간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늦게 알게 돼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우비처럼 잠시만 내게 머물다 간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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