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3년 2월호
저녁에는 미뤄 놓은 숙제처럼 <아바타 : 물의 길>을 보고, 문구점에 가서 한문 공책을 몇 권 샀다. 다이소를 2군데 돌면서 한문공책을 찾아보았지만 가는 곳 마다 없어서 분명히 문구점에는 있을 거란 생각에 갔는데, 역시나 문구점에는 있었다. 처음부터 다이소 말고 문구점에 갈 걸.
사온 한문 공책을 집에서 펼쳐보다가, 문득 S의 이름을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글자인 내 이름과 달리 열 글자나 되는 S의 이름.
아직은 어떤 발음으로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S의 이름을 계속 쓰다보면, 우리가 만나게 될 때쯤이면 나는 선명하게 S의 이름을 발음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S를 사랑하게 된 이후로 나의 매일 매일은 S로 가득 차 있다. 태국을 떠올리면 S를 처음 만났던 치앙마이가 떠오르고, 방콕행 비행기를 검색할 때면 ‘S가 있는 도시.’ 라는 느낌이 먼저 든다. 다른 태국 친구들도 있는데, S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걸 보면 지독한 상사병에 빠져버렸구나 싶다.
비단 그것뿐일까. 중국 음식, 중국어, 중국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볼 때마다 나는 S를 생각한다. S도 그럴까. 소주와 불고기를 먹으며 나를 떠올리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내 생각을 할까.
여름을 좋아하는 S와 하와이안을 입을 수 있어서 여름을 좋아하는 나. 여름에는 하와이안을 함께 입고, 겨울에는 설경을 보면서 소주를 마시며 불고기를 먹으면 로맨틱할 거 같다는 S의 말에 입가에 호선이 그려지는 순간들.
눈이 웬만해서는 오지 않는 진주에 눈이 내리듯이, 내 마음에 눈처럼 하얗게 쌓인 S에 대한 감정을 생각하니 나는 더 단단해진다. 절대 S를 놓치지 않겠다고. S로 인해 나는 한 발짝 더 용기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쓴 “워 아이니.”처럼 매일 S에게 말하고 싶다. 너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너는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