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Fantasma

시작

Fantasma 팔십 번째 이야기, 시작

by 석류


이별하던 순간까지 도무지 읽을 수 없었던 너의 표정을 어느 날부턴가 나는 자연스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너의 표정의 미세한 떨림을 보았던 순간,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었다. 다시 시작하자고. 그러나 말할 수 없었다. 두려웠다. 다시금 내가 상처를 받고 말까 봐. 시작도 끝도 네 손 끝에 걸려있는 느낌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고, 나는 쓴 한약을 삼키듯이 목울대 저편으로 말들을 조용히 삼켰다. 차라리 말하지 않아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시작 뒤에 또 다른 끝이 기다린다면 난 얼마나 더 많은 날들을 상실로 살아내야 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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