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주름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파파박 스치고 지나간다.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어째서 많은 인류가 기상을 어려워하는지 궁금해할 만큼 침대 속으로 더 꺼져간다.
아마도 새로운 해가 뜨는 것, 오늘 처음 본 것들에 대한 것들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자동화 시스템에 지배받는 사람처럼 To Do List를 훑다가 일정이 끝난 시점까지를 머릿속으로 한 바퀴 돌고 나도 모르게 셧다운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랄까.
바쁜 머릿속을 비웃듯 발가락의 작은 움직임조차 허용하기 싫은 아침이다. 거의 매일 아침.
막상 일어나면 자동화 기계는 성실하게 미션을 수행한다.
눈을 감고도 아침밥을 만들고, 아이의 입맛에 맞춘 재료들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 어느 순간 요리가 된다.
모든 일정에 시계 확인은 필수다. 디지털시계는 분 단위가 헷갈릴 이유가 없어서 좋지만, 헷갈리지 않아서 더 애간장이 녹는 기분이 든다. 1분 뒤에 일어날 바쁜 상황들이 눈앞을 스치면 초단위로 체력이 달아나간다.
역시 상상은 가장 위험한 에너지 킬러다.
맡은 일을 다한다고 해서 행복할까. 생각해 보자.
그냥 0이다. 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복은커녕 달력에 날짜 지나가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 나이 계산이 매번 " 올해 몇 살이야?"라는 질문에 버버벅 거린다.
제로를 위해 달리는 하루.
진지하고 근엄한 모습의 내 표정 위로 갓과 턱수염, 그리고 버선발을 신겨주고 싶다.
태어나 어떤 감정도 느껴 본 적 없는 건조한 피부 위로 강렬한 눈빛을 지나 머리카락 한 올 내려오지 않은 짱짱한 상투머리가 하늘 높이 솟아있다.
조선시대에는 미덕이었으나. 지금은 글쎄.
이 무렵 유쾌한 할머니로 늙고 싶은 꿈이 생겼다.
진지하게 패인 미간 주름 위로 즐거움에 활짝 웃는 주름을 덮고 호기심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몸은 아주 유연하고 향기가 나는 그런 할머니.
제 멋대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고 웃으며 여유롭게 대처하는 백발의 여자.
거기에 근육도 빵빵하면 어느 노년 부럽지 않겠다.
조금씩 아이와 짝궁과 함께 장난치고 웃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런 날은 왠지 아침에 더 잘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유쾌한 주름살을 늘리며 살고, 그렇게 저물어가는 꿈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