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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Jan 31. 2024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세요



 어릴 때부터 '무엇'이 아닌 적이 없었다. 

태어나 누워서 먹고 자는 것이 일이었던 적부터. 아빠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초대 여자대통령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 시대에는 여전히 대학 문턱에도 가지 못한 여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치 이뤄진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확신에 차 아빠는 내내 주문처럼 외우고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아빠의 바람이 그렇게 차곡차곡 내 귀와 마음에 쌓이는 동안, 키는 빠르게 자라나고 어느 날 춤을 추었다.

그걸 본 아빠는 무용학원에 데려갔다. 그렇게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무용을 배워 훌쩍 성인이 된 뒤에도 여자대통령이 아닌 춤추는 사람이 되었다. 

 두발 자유화가 되기 전, 중학교에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단발머리들 속 혼자 머리를 기를 수 있었다. 그 덕에 내가 무용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전교에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언제나 그런 나에게 호기심이 많았다. 몸은 어떻게 마를 수 있는 건지. 무용을 하면 어떤 기분인지. 마치 현실 너머 가상의 나라에서 온 사람에게 질문하듯 눈이 빛났다. 어린 마음에 그 관심들이 싫지 않았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하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아직도 해?"였다. 그럼 나는 "재미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재미만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느 평범한 날에 갑자기 친구의 말에 화가 났다. 그 아이는 자신의 꿈이 뭔지,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는 했다. 겉으로는 '그럴 수 있지.'라고 지나쳤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뜻 모를 분노와 무시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그 말들에 필요 이상으로 혐오하고 있었다. 


 그때로부터 오래 흐른 뒤, 나는 꿈꿔오고 쌓아왔던 모든 것과 멀어졌다.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어린 생명을 돌보다 눈떠보니 처음으로 '무엇도 아닌'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토록 혐오했던, 아무 꿈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내 몸은 점점 투명해져 길을 걸어도 말을 걸어도 사람들은 나를 희미하게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는 것 같았다. 과거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빠가 어린 나를 보고 여자대통령이 될 거라고 신나 하셨던 얼굴을 보는 게 참 좋았다. 나를 그렇게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는구나. 내 존재만으로 아빠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겠구나. 구름 위로 하늘 높이 올라가는 기분에 취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미묘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은. 

   청소년기에는 세계의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아빠를 통해 들었다. 역사의 획을 그은 수많은 예술가들. 그들 이야기를 들으면  공중에 몸이 둥 떠오르는 듯 흥분되었다. 너무 멋진 그들의 업적과 정신에 취해 나도 훗날 그들의 옆 자리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도제 된 예술 방식으로 훈련하고 테크닉과 성적에 집착하는 학원의 가르침을 받으며 내 머릿속에 창의적인 움직임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그런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고. 그것을 알면서도 인정할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까지 속이고 대회에서 성적을 내며 위안했다. 그것이 원하는 일이고 선택한 삶이라고  다독이며 오랫동안 나를 춤추는 사람으로 세워뒀다.


   성인이 되고 좋은 대학에 합격했어도  아빠의 말 속 위대한 예술과와 나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이상했다. 열심히 훈련하고 성과를 냈는데, 도저히 그들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 격차만큼  좌절했다. 대학 뒤에는 더 이상의 목표도 가질 수 없었다. 

 사람들은 유명 대학에 합격한 나를 대단하게 여겼고, 축하했다. 이제 자유롭게 뛰어보라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쌓여 온 시간이 서서히 저물어 갔다.

 

   삶은 아이러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나서야. 진심으로 되고 싶었던 '무엇'을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

나는 초대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았다. 위인에 흥미를 느꼈지만 그들과 나는 성격이 달랐다.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춤추고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 즐거웠을 뿐이다. 


   사실 어릴 꿈이 없다고 말하던 친구를 내가 남몰래 질투했었던 것 같다. 

방황할 자유, 모를 수 있는 자유, 그 나이에 맞는 혼돈 그 모든 것을 누리는 그 친구를 부러워 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저 깊은 곳에서 허기진 어린 내가 그것들을 받아먹는다.


'무엇'이 아닌 엄마는, 아이가 '무엇'으로 보이지 않는다.

두 눈을 맞추고 있으면 마치 그렇게 서로를 향해 있는 기분이 든다.

아주 찰나의 순간에 완전해진다. 

그렇게 나의 어린 아이를 안고 깊이 숨어 있는 어린 나도 함께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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