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아 Feb 14. 2024

명절에 떠나는 첫 여행

우리가 사랑한 바다



결혼하고 나서 명절여행은 꿈도 꾸지 못 했다.



명절에 떠나는 첫 여행은 오래 눌러왔던 만큼 짜릿함을 터트렸다. 

땡땡이를 쳤는데 거기에 강릉 바다까지 얹으면 그 여행은 출발 전부터 이미 세계불꽃축제의 절정이다.

차를 달려가면서 나는 연신 좋다. 좋다를 외쳤다. 

서쪽 끝에 사는 우리는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동으로 달렸다. 몇 년째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

결혼을 하면서 이런 삶을 꿈꿨던 것 같다. 같이 떠날 수 있는 친구와 원하면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태. 

많은 날들이 켜켜이 쌓인 뒤, 어느 날 거짓말처럼  명절을 여행으로 보내게 되는 날이 왔다.

봄의 초입이라 바람도 달고 날씨도 맑았다. 반쯤 공중에 붕 뜬 채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는 4박 5일의 일정이 지나갔다.


첫날 사천진 해변에 도착해 아침 겸 점심을 먹는데, 명절기간 동안 해외에 출국하는 엄청난 수의 공항이용객 뉴스가 나왔다. 우리만 본가에 안 가고 여행하는 게 아니구나. 미세하게 잡고 있던 죄책감 마저 와다닥 떨어져 나간 기분. 가자미조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들으며, 뱃속에 가득 찬 바다 냄새를 맡으며 옅게 웃고 식당에 나왔다.

눈앞에 사천진 해변을 표시하는 영어로 된 푯말이 보였다. 그 너머로 푸른 제주에서 볼 만한 바다가 고요하지만 강하게 해변가로 밀려 올라왔다. 손 잡고 걷던 아이가 점점 내게서 멀어져 백사장 깊은 곳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한참 바다를 바라보다 파도와 호흡을 맞추듯 펄쩍펄쩍 뛰었다.

내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의 표정을 보며 나도 같은 얼굴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아이가 웃는 것에 나는 쉽게 물든다. 그 아이가 우는 것에 나는 쉽게 물든다. 


너무 좋다.라는 말이 아이에게 전염되었다. 연신 너무 좋다. 쏟아내는 말들을 듣는 것.

여행의 날들을 다른 유려한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그 순간을 연신 셔터를 눌러 담아내고 눈으로 만져보고 입으로 머금어 삼켰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고 이끌린 듯이 밖으로 나갔다. 해변가를 밟다가 뛰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엔 아이는 홀로 기상해 바다를 한 없이 바다보다 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누군가 그랬다.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자신의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격을 얻을 수 있다고.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그날 이후로 조금씩 무언가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밤, 우리는 강릉 막걸리를 한 병 나눠 마시고, 반쯤 만취가 되어 아이에게 처음 자유를 선물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껍데기 집에 걸어가 소주를 나눠 마시고 아이는 밤에 깨어 엄마 아빠와 흥겹게 있는 시간을 싹싹 모아 즐겼다. 

그 순간만은 아이를 규칙적으로 생활하게끔 해야 하는 엄마로서 책무를 내려놓고 자기 싫은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론 취해서 가능한 것도 있지만 단지 취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은 다시 나를 변화시키고.

밤새 서로의 무장 해제된 모습에 깔깔거리고 하루를 넘겨 함께 잠이 들었다. 

동쪽에 있는 바다가 주는 힘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특히 명절 땡땡이치고 간 겨울바다는 한 여름 보다 더 화려했다.



십여 년 전, 유명한 경포대 해수욕장 보다 안목해수욕장을 더 좋아했었다.

사람이 들끓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성향에 딱 맞는 곳은 아직 알려지지 않는 안목 해변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카페가 줄지어 올라가면서 차도 사람도 가득한 곳이 돼버렸다. 그 허전한 마음을 채워 준 곳이 사천진 해변이었다. 물론 몇 년 사이에 이곳도 안목 해변처럼 변해버릴 것이 뻔했지만. 지금 소박한 민박과 펜션이 있는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를 맘껏 느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강릉에 올 때마다 가던 고분옥 할머니 두부찌개집은 사라졌다. 십 년을 넘게 가던 곳이 그렇게 한 순간에 사라져 예고 없이 맛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나는 더 또렷하게 그 두부찌개의 향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몇 개월 안되어 다시 찾은 강릉에서 구석구석 몰랐던 음식점을 찾아낼 때마다 새로운 발견에 반가웠다. 사라진 뒷모습을 보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사라져서 다가올 수 있는 새로운 얼굴들을 환대하는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잃어버린 모습 뒤로 새롭게 온 나의 다른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지나간 뒤통수만 붙잡고 우느라 옆에 와 있던 새 얼굴을 볼 새가 없었다. 







즐거운 시간은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삼일째 되는 날. 강릉역에 차를 대고 기차에 올라 묵호역에 갔다. 걸어 묵호항 주변에 도착했을 때 다리는 뻐근했지만 그 장소와 한껏 친해져 있었다. 아마 차로 왔다면 느끼지 못했을 거리의 역사를 곁눈질로 힐끔거리고 오다 정이 들었나 보다. 항으로 걷다 보면 조그마한 등대가 가운데에 세워진 회전차로가 나오는데, 모퉁이 바로 넘어 있는 카페가 묵호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다. 5평 남짓한 작은 카페 안에서 회전차로를 보며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풍경에 눈이 빨려 들어갔다. 마치 영원히 차가 돌고 돌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계속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 같은. 다른 세상의 시간을 느끼는 것만 같은 분위기가 있다. 그곳의 흑임자라테를 먹고 머리를 때려 맛은 듯한 잔잔한 충격을 받고 다시 바깥을 바라보는 것을 반복하다 노인이 되어도 좋을 것 같은 이상한 환상에 휩싸인다. 

우리는 간발의 차로 기차시간을 놓쳐 두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모든 게 그 마법 같은 카페에서 일어난 일이다. 누구도 우리의 상황을 비관하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맘씨 좋은 사장님께 강릉역 가는 법을 물어보거나, 버스 어플을 가동하면 그만이었다.


버스터미널로 가는 마을버스는 정겨웠고, 그 버스 안은 우리를 여행자에서 동해 거주민으로 만들어주었다.

정류장 이름에 귀 기울이며 창 밖을 바라보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한다. 여기 살면 어때?라는 진심 가득한 농담도 던지면서.


막국수를 먹으면 잘 체하는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들린 가게에서 한 그릇을 뚝딱 마시며 먹고 

무서워하던 고속도로 운전을 여유 있게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번 강릉은 땡땡이친 날처럼 흥분되지 않더라도, 익숙하게 찾아가 인사할 수 있는 곳들이 생겨서 기분 좋다.


 오랜만에 휴대폰 배경화면이 바뀌었다.

묵호항 카페 창너머 회전차로.


묵호 회전차로 카페







 

이전 08화 사랑받고 싶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