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갈 수도, 앞으로 갈 수도..
37.
어리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많다고 하기도 애매한 나이.
각종 역할들의 정점에 서 있기에 모든 것에 안타깝고, 자칫 잘못하면 많은 원망을 듣는 나이.
회사에서 비전을 보여야 하고,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보여야 하며,
아내에게 노력을 보여야 하고,
아이에게 존재를 보여야 하는..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나 자신을 볼 수 없는 나이.
어설프게 시작된 사회생활, 결혼생활, 아빠라는 이름..
30대라는 수식어도 어색한 시간들이 지나고 또 지나 37이란 숫자와 마주한다.
적당히 아팠고.
적당히 잃어버렸고.
적당히 실패했고.
적당히.. 사랑했다.
뒤돌아 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길도 보이지 않는 이 곳에서.
숨 막히는 사막에 갇힌 것처럼 아득하고,
눈을뜨되 보지 못하고, 들리되 듣지 못하고, 말하되 말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나'라는 이름 옆에 더 큰 숫자를 맞이하기엔 너무 두렵다.
아직 나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는 하루하루 '더 늙은 나'와 마주해야 하고.
그런 나는 모든 면에서 더뎌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삶의 대부분을 생산노동에 종사하고.
자본주의가 정의해 놓은 '돈=가치 있는 일'이라는 대명제의 테두리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지금껏 자유로운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했던 그 자본주의 논리를
사랑하는 가족이 생긴 후에는 그 말도 안 되는 대명제의 노예로 기꺼이 한 몸을 바친다.
붙잡고 싶은 나이..
더 이상 가면 너무 초라해지고 천대받을 것만 같은 나이..
오늘도 그 날의 정오에 서서 가득 내리쬐는 햇살이 영원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