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9 27
어제는 씽씽카를 타다가 무릎을 심하게 까진 민재가 유모차에 타서도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이를 달래려 내가 말을 꺼낸다.
'민재야. 민재가 많이 아프겠지만, 아빠 엉덩이 수술했을 때는 생살을 얼마나 많이 도려냈는데.. 그거에 비하면 아픈 것도 아니야. 약 바르고 한 밤 자면 하나도 안 아플걸?'
'아빠. 아빠 수술했을 때는 이것보다 다 아팠어?'
'그럼.. 아빠는 엄청 아파서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그랬잖아.'
자신의 아픔을 빌어서 내 아픔에 대해 공감해 주는 것에 갑자기 마음이 울컥한다. 이렇게 가까이서 어린 나이에 나의 아픔에 대해 공감을 해주다니... 나의 과거가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이 불쑥 든다.
나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그 어떤 감정에도 공감을 하지 못했던 듯하다.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무언가를 하다가 다치곤 했고, 퇴직 무렵에는 회사에서 크게 다쳐서 산재로 장애등급까지 얻으셨다.
하지만 아버지가 치료받는 시간 동안 병원도 많이 가지 않았고, 전후 정황과 그 아픔에 대해서 심하게 공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아버지'란 이름으로 모든 고통과 아픔에 초월한 존재. 부등호의 방향이 내게만 향해 있는 것처럼.
감정적인 것.
물질적인 것.
모두를 받기만 하는 존재.
라고 생각하고 내 에너지의 소모를 최소화했으리라.
'철이 없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민재가 내게 공감해주는 것은 내가 잘하고 있기 때문일까. 민재가 나와 다르기 때문일까.
잘 알 순 없지만, 내 아픔에 공감을 해주며 울음을 그치고 나와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민재가 너무 예쁘다.
강한 척 얘기하지만.
네가 이번 상처로 깨닫는 바가 많으면 괜찮다 생각하지만.
아픔을 잊고 유모차에 순간 잠이 든 민재의 눈치를 살피며.
심하게 까진 민재의 무릎을 보는 마음이 좋지 않다.
요즘 들어 씽씽카와 자전거를 거만하게 타며 잔소리에도 별 반응을 하지 않던 민재.
이런 일이 생기리라 예상은 했지만 다치고 나니 마음이 아프다.
'다치지 않게 주의를 더 살펴서 말해줄걸...'
안타까운 자책감이 강한 아빠가 되겠다는 각오를 뭉개 뜨리고, 긴 한숨과 함께 민재가 아프지 않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