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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밤하늘에 별 하나

by Far away from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김창옥 교수가 나와서 강연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별로 좋은 느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 기대감을 갖지 않고 보았다.


하지만 오늘 유독 힘든 날이라서 그런지, 강연이 내 생각과 다르게 임팩트가 있어서인지 몇 번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중 한마디가 유독 기억난다.


'자식이 태어나 같이 붙어있는 별이라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멀어져 소통하기가 힘들어진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는 급속도로 멀어져서 나중엔 무척 소통하기가 힘들어지다가 부모의 죽음이 찾아오게 되면 소통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빠르게 소통하고 만날 수 있는 웜홀이 있다. 그건 바로 추억이다. 그 사람이 부르던 노래를 들을 때나, 어떤 향기를 맡거나.. 그 어떤 추억의 비슷한 느낌을 느끼게 되면 거리와 상관없이 그 사람을 빠르게 만나고 웃으며 더듬을 수 있다..'


부모 자식을 예를 들어 얘기했지만, 그 말은 그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형제가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밤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그 많은 별들은 서로 각기 태어나고 소멸하고.. 서로의 거리를 지키다가 멀어지다가..

하나의 성운에서 가족과 같은 별들이 태어나고.. 겉보기에 가까운 가족과 같은 성단을 이루지만, 결국 각자의 삶을 살다가 소멸한다.


갑자기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손 떨리게 조급한 마음으로 문자를 보낸다..


'엄마 사랑해 보고 싶어..'

'아빠.. 사랑해'


두 분 다 읽으셨지만 답은 없으시다.

하지만 읽으셨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서둘러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웜홀을 떠올린다.


엄마..

초등학교 때 내 왼 발이 크게 데어 학교를 업고 가시곤 했던 게 생각난다.

따뜻한 엄마 품에서 떨어져 다친 채 낯선 학교로 떨어지는 게 무척이나 싫었었지..

하지만 그거면 됐다. 엄마 등을 잠시나마 더 빌려 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된 듯해서 떼를 쓰지 않았다.

이래저래 아프고 다쳐 막내지만 일찍 철이 든 나로서는 부모님이 자식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그 어떤 것에도 떼를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가서 성장한 힘으로 엄마의 짐들을 들어드리는 게 행복했고, 그럼에 막내의 어리광을 부려 핫도그나 야채빵을 얻어먹는 것이 즐거웠다.

밖에서 놀다 들어오는 길에 엄마가 해놓으실 저녁 메뉴를 생각하는 게 기대되었고,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메뉴를 알아맞힐 수 있을 만큼의 냄새가 흘러나오는 게 행복했다.


엄마가 빨래하는 것, 설거지하는 것, 가을 햇살에 시래기를 말리는 것, 햇볕 좋은 날 이불을 털어 말리는 것, 가계부를 쓰는 것,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그렇게 일하다가 잠시라도 앉을라 치면 후다닥 엄마의 무릎을 차지하여 눕는 것이 행복했다.


희한하게 항상 좋은 냄새가 나는 엄마 냄새를 맡는 것도 행복했다. 엄마 냄새가 나는 향수가 있으면 사고 싶을 정도로..



아빠..

아빠는 항상 8시 정시 퇴근을 했다.

8시는 아빠 시간이라고 생각될 만큼 정확했다.

이천에서 근무를 한지라, 가을이 되면 메뚜기를 잡아서 통에 가져오곤 하셨다.

또 회사 근처에 농사를 지어 가져오신 호박과 기타 농산물들로 이 즈음되는 가을이면 항상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집에 오셨다.

그런 아빠가 힘들까 봐 나는 수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마중을 나가곤 했다.

자전거를 타고 먼저 갈 법도 한 데 가다 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아빠와 비슷하게 가곤 했다.

아빠에게 가는 웜홀을 타니 캔 속에 가득한 메뚜기가 뛰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수유역 1번 출구의 차갑지만 기분 좋은 공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주말만 되면 아빠는 차를 수리하거나 집을 단장하거나, 페인트를 칠하거나 화분을 손질하거나..

그런 아빠를 도와주는 게 즐거웠다. 가끔 화내시긴 했지만, 아빠가 하는 것은 뭐든지 능숙해서 신기했다.




요즘은 생각보다 궂은날이 많다.

저녁에 별자리를 보고자 하거나, 그믐달이나 초승달일 때 천체를 관측할라 치면 희한하게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 많이 겹친다.

살아가는데 대부분 맑은 날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내 생각보다 궂은날이 많다.

처음에 천체 관측을 하려 했을 땐 흐리지만 잠시 맑아진 하늘을 찾아 뭐라도 보려 하곤 했는데.. 이젠 흐린 하늘과 비 오는 하늘을 인정하고 싶다.

엄마 아빠가 항상 나를 보면 얘기하듯이..

순리대로 살고 싶다.


젊은 날의 순리가 맑거나 흐리거나 도전해서 극복하는 거였다면.. 이젠 세상 모든 것들을 인정하고 싶다.

아무리 뽑고 염색을 해도 흰머리가 나는 것을 막을 순 없는 것처럼..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으려 애쓰고 싶지 않고, 벌어져 버린 일로 인해, 타인이 날 이해 못한다 해서 이해를 구하려 나 자신을 소모시키고 싶지도 않다..


'나'라는 별로 살면서.. 다가오는 별과 좋은 추억들을 나누고 멀어지는 별과 나눌 수 있는 웜홀의 힘을 믿고 싶다.


밤하늘의 별 하나가 반짝인다.

그 별은 파란빛을 냈다가.. 흰색 빛을 냈다가.. 약간 더 밝았다가 흐렸다가를 반복한다.

아마도.. 외롭거나.. 행복하거나.. 무언가를 추억하거나.. 사랑하거나..



비 오는 4교시.. 음악수업..

유난히 촉촉한 풍금소리에 빠져들다 나간 학교 정문엔 우산을 들고 있는 엄마가 서 있고, 날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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