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명체로 세상을 산다는 것

아듀 2017

by Far away from

하루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과 사의 소식과, 생과 사에 관련된 의식들을 치르며 산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수없이 많은 생명체들의 생과 사를 접하고 수없이 많은 생명을 섭취하고 배설하며 산다.

이렇게 수십 년 살고난 이후 정도 되면 생과 사에 초연해질 법도 한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생과 사는 바로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반드시 겪었고, 겪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을 위협하는 요소는 많다.

각종 질병과 바이러스, 알 수 없는 사고와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불명확한 요인들. 심지어 사람들 간의 심리적인 갈등과 국가적 상황과 재난 등이 작용할 수도 있다.

이토록 생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마치 어느 정도까지의 삶이 보장된 것처럼 현재를 살아간다. 자신의 생이 얼만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불명확한 미래를 위해 얼마큼 '현재'를 포기하고 살 것인가? 여기부터는 개인적인 선택의 몫이다.


현재를 살기 위해 1분 1초를 쪼개 투쟁해야 하는 삶도 있고,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미래가 보장되는 삶도 있다. 이런 불평등한 상황은 유독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신이 태어난 환경에 따라서 척박한 삶을 사느냐, 풍요로운 삶을 사느냐..


그런 불완전하고 불평등하고.. 각기 상황에 따라 부조리하고 모순투성이인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문화와 소통과 해소 방법 등을 찾기 시작한다. 때로는 술이 될 수도 있고, 술로 연계된 음주문화가 될 수도 있고, 음악이나 운동이 될 수도 있고, 그럴 여유조차 없다면 자신만의 특정한 습관이 될 수도 있다.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어쩌면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는 것들로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해소감'을 맛보게 된다. 아무리 깨끗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미관상 좋지 않은 모습의 배설물을 배출해야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특성처럼. 결코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만으로 만 살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아팠고 아프고 아플 것인 인간이.

기뻤고 기쁘고 기쁠 것인 인간과.

슬펐고 슬프고 슬플 것인 인간에게

행복했고 행복하고 행복할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희망했고 절망하고 또다시 기약하는 미래를 약속하며

태어났고 살며 죽어갈 진실을 외면한 채

또 하루를 울고 웃고 보낼 수 있는 것은

인간이란 '생명'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고유한 특성이기에..


나이가 들어 흐려져 가는 시야에도 젊은이들을 보면 그저 좋고..

내 삶인 것처럼 흐뭇하고..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면 또 한량없이 처량하다가도

그렇게 주어진 하루를 또 각종 긍정의 미사여구로 위안 삼으며 희망이란 이름으로 힘겹게 살아간다.


아듀 2017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17년이여..

숫자에 불과한 그 숫자가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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