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분신

고독_1

육아를 한다는 것_9살 민재

by Far away from

민재는 어렸을 때부터 까칠하고 부모밖에 모르는 아이 었다. 다른 사람이 이쁘다고 해도 짜증을 내기 일쑤였고, 처갓집이나 본가에 하루라도 맡기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민재가 9살이 다 되어서 처형네 아이들과 어울려 큰 처형네 집에서 1박을 혼자 보냈다. 둘째가 생겨나고 오빠 노릇을 하느라 그런지 많이 의젓해지고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사교성도 좋아진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민재가 처형네에서 하루를 보내고 데리러 간 나를 보았는데도 전에처럼 극심한 애정표현을 하지 않고 처형네에서 더 있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인다.


'때가 된 것일까?'


마음속에서 준비해 왔고 항상 되새기던 일이지만 급작스럽게 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자꾸 마음속에서 되뇌었던 '건강한 분리'의 절차를 밟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서늘해진다.


뭐니? 뭐가 이렇게 서늘하니?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사랑을 필요로 할 땐 흠뻑 젖도록 잔뜩 사랑을 주고, 혼자 있고 싶어 하면 혼자 있게 하고.. 흔들리면 흔들리되 떨어지지 않게 보살펴주고, 방황하면 방황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주며 지켜봐 주고자 했던 나의 의지가 이런 작은 일에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난 그렇게 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 어떻게 의지대로 되는 게 사람이겠어? 아이가 흔들리는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끊임없이 흔들리겠지..


다시금 민재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예전의 민재의 모습을 보이며 나에게 사랑 표현을 많이 해주지만, 그 사랑 표현에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잠시 놀란 가슴 진정시킬 시간쯤은 있어야겠지.


이론적으로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정서적으로 교감을 나누다 보면 그 이론대로 되질 않는다.


집에 와선 잘 놀아주는 아빠, 회사에선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직장인, 취미활동에 열성적이고 미래 비전을 위한 자기계발에도 적극적인 사회인..


말은 참 그럴싸하고 듣기도 좋지만, 난 그런 '이성적'인 인간이 애초부터 아니다. 집에 와서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라는 표현에서부터 거부감이 드는 나로서는 내가 즐겁고 행복하지 않으면 애초부터 너무 티가 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성보단 감성과 정서로 사람과 시간을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더 끈적끈적하고 상대방의 변화에 순간 대응력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휴.. 나란 사람이란.'


가끔은 이런 나라서 한심하고 속상할 때도 많지만 그래서 더 좋은 점도 많지 않을까? 위안 삼아 본다.


육아의 고독에 푹 빠져나온 이튿날..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 민재의 육아에선 비워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아이는 나 아닌 다른 것들에 더 매료될 것이고, 나는 좀 더 다양한 모습의 세계를 보여주고 지금까지의 정서적 교감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이 새로운 것에 몰입해야 하고, 더 많은 것들에 전문적이어야 한다. 더 크고 매력적인 내가 되는 것은 더 커진 아이와 함께 더 큰 교감을 느끼는 방법이기도 하고, 아이가 자주적으로 독립하는 그 순간에 나 자신이 스스로 더 빛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작은 것이라도 도전하리라.

2018년..

널 위해서. 날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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