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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 away from Jun 06. 2018

미꾸라지

2010.6.6cy

어느 계곡에 미꾸라지 한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미꾸라지는 작은 관으로 통해있는 옆 계곡의 웅덩이에서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그 웅덩이에는 미꾸라지가 상상할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과거의 추억이 담긴 공간들도 그곳에 있었고 미꾸라지의 꿈이 담긴 책과 노트들. 그리고 더 중요한건. 그 공간에만 가면 무엇이든 잘 풀릴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마력과 같은 힘이 있었다.

 

항상 힘이 들때면 그곳을 찾곤 했고 그곳을 찾는것만으로도 훌륭한 재충전이 되는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시간은 흘러흘러 미꾸라지는 더 자라났고. 미꾸라지에게는 많은 역할들이 강요되었다.

 

그럼에 따라 웅덩이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고. 급기야는 1년이 넘도록 그곳에 못가게 되었다.

 

지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자신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생각을 해야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기준조차 잡지 못하며 허덕이는 생활을 하다보니 미꾸라지는 문득 그 웅덩이가 생각났다.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이렇게 가다가 나이만 들어지고 이룬것은 없으면 어쩌지... 그곳에 가서 생각을 정리해야겠어.'

 

그 웅덩이로 가는 작은 관을 통과하려던 미꾸라지는 문득 자신의 몸이 비대해져서 그 관으로는 더이상 들어갈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미꾸라지는 좌절했다.

 

'그곳에 갈수 없다니.. 하늘이 날 버리심이 분명해.. 이젠 생각할수 있는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단 말이야...??'

 

하지만 좌절도 잠시.. 미꾸라지에겐 그곳에서 방황하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이미 미꾸라지가 해야하는 역할과 임무들이 너무 많아서 충분한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 따라 미꾸라지에겐 하루나 이틀쯤의 휴식시간도 어색할만큼 너무 끊임없이 무엇을 하는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미꾸라지의 비대해져 굳어버린 몸은.. 이미 추억과 감성으로 가는 과거의 풍요로운 공간으로 가는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슬픈것은 그 절망과 좌절감이 미꾸라지에게 잠시간의 감흥만을 준채.. 다시금 일상에 푹빠져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는것이었다.

 

하늘에선 천둥이 쳤다.

 

그 소리는 마치.. '너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니?' 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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