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저녁꽃 Oct 10. 2021

[댓글 살인마] 댓글에 밑밥 깐 '포털 전성시대'

포털(portal)이란 말은 어떤 웅장한 건물에 들어가는 ‘관문’ 또는 ‘입구’라는 뜻이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 이 곳을 통하면 검색, 메일, 커뮤니티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게 된다. 세계적으로는 구글과 야후, 우리나라에는 다음카카오와 네이버가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인터넷 초창기 시절 우리나라에도 수 많은 국내외 포털이 문을 두드렸다가 사라졌다. 라이코스, 야후 같은 해외 포털 사이트가 초반 시장을 장악했다. 또 하이텔, 천리안, 프리챌, 파란 등 국내 닷컴 기업도 각자 독특한 서비스로 이용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추억의 포털 사이트들의 촉수를 한번 건드리고 넘어가보자.


라이코스(Lycos)는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연구소에서 컴퓨터학자인 마이클 로렌 멀딘이 검색 엔진 프로젝트로 시작해 1994년 상용화했다. 설립 9개월 만인 1996년 뉴욕 증시 역사상 가장 빨리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1999년에는 40여개 국에서 인터넷 검색엔진 1위 자리에 올라 2000년대 초반까지 야후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97년 등장한 구글과 야후,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의 경쟁사들은 서비스를 개선하는데 주력했지만, 라이코스는 수익에만 집착하다 점유율이 크게 하락해 2001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가수 엄정화와 검은색 리트리버를 출연시커 “잘했어, 라이코스!”라는 유형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4년 만에 홀연히 국내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다. 라이코스코리아는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에 2002년 통합돼 2016년 10월까지 라이코스 도메인으로 된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한 바 있다.


한때 세계 1위 인터넷 포털업체였던 야후(Yahoo)는 1994년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인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가 만들었다. 라이코스와 비슷하게 1996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고, 역시 미국의 닷컴 거품이 빠진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차세대 검색엔진 개발에 실패하면서 시장의 패권을 구글에게 넘겨줘야 했다. 전성기 시절 미국, 캐나다, 중남미를 비롯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까지 포털시장 점유율 1위를 점했다. 결국 검색 기반의 구글에게 왕좌의 자리를 내준 뒤 일본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1997년 국내에 진출한 야후코리아는 한때 국내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호황기를 누렸다. 이후 네이버, 다음과 경쟁에 밀려 막판에는 점유율이 0.2%대까지 추락했다. 주요 수익원이었던 자회사 오버추어코리아와 네이버 간 검색광고 계약이 해지되면서 2012년 10월 서비스 중단을 발표했다. 서비스 종료 이후 2019년 추억의 야후꾸러기 페이지가 복원돼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00년 운영을 시작한 야후꾸러기는 '마법학교', '인형놀이', '숙제박스', '변신슈가' 등 콘텐츠들로 인기를 끌었다. 


국내 포털 사이트 '프리챌'은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누렸다. 한때 회원 1000만명, 커뮤니티 100만개라는 어머어마한 생태계를 확보하면서 국내 최대 포털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02년 유료 사이트 전략이 외면을 당하면서 재정난으로 2013년 서비스 중단 조치를 내렸다. 초창기 PC통신 하이텔과 포털 한미르가 2004년 통합해 선보인 '파란' 초기에 배우 백윤식을 모델로 론칭 프로모션을 하고, 2006년 국내 최초로 기가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파란을 일으켰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이후 다음과 네이버가 국내 포털 시장을 양분하면서 지금까지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1995년 2월 설립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은 1997년 5월 국내 최초로 무료 이메일을 제공하는 한메일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0년 3월 '다음쇼핑'을 개설하였고, 명칭을 디앤샵(d&shop)으로 변경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에 사옥을 2009년 모바일 전용 페이지 '모바일다음' 오픈, 2013년 검색광고 플랫폼을 독자 운영으로 전환했다. 2010년 3월 출범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와 2014년 10월 합병해 ‘다음카카오’로 새 출발을 알렸다. 양사의 합병은 국내 IT 업계 사상 가장 큰 규모로 네이버가 주도해 온 국내 인터넷 기업 판도에 커다란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실제 2019년 카카오는 매출 3조원 시대, 영업이익 2000억원을 넘어섰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닷컴 열풍이 일기 시작하던 1999년 이해진 GIO가 설립한 1세대 포털사이트다. 지식인과 블로그 서비스로 야후, 프리챌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2000년대 중반 1위 기업으로 올라갔다. 인터넷 초창기 각종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난립하는 가운데 그야말로 ‘관문’의 역할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지식인 등 검색 엔진의 성능을 강화하고, 블로그 등을 통해 커뮤니티 생태계를 탄탄하게 구축했다. 블로그는 사용자가 자신의 홈페이지 기능까지 겸할 수 있어 사용자 수 증가에 큰 몫을 했다. 사용자들이 자연어로 정보를 묻고 답해 정보 검색의 정확성과 용이성을 높인 플랫폼인 지식인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죽하면 초중학생들이 부모에게 학교 숙제를 물어보면 “네이버에 물어봐”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때 시장의 80%까지 점유한 네이버는 검색 플랫폼 시장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넘어가면서 점유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의 문장 #1]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