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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11. 2021

[아빠의 문장 #3] 개구리

고통이 고통으로 끝난다면 이겨낼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큰 아이를 낳은 아내는 1996년 여름 고생을 많이 했다. 쌍문동 단칸방에서 선풍기와 모기장에 의지해 그해 여름을 났다. 


아이는 모기장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천장에 매달아 놓은 모빌을 보면 개구리마냥 발과 팔을 휘저었다. 내 오른손 검지를 손에 주면 꽉 쥐었고, 입에 대면 아직 나지 않은 잇몸으로 꽉 깨물곤 했다.


6번 버스를 타고 집에서 서울역 근처 회사에 출근했다. 집에서 개구리 헤엄을 치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퇴근길이 마냥 즐거웠다. 정류장에서 보석가게를 지나 빵집 사잇길로 난 골목길 집까지 마구 뛰었다.


여름을 지나며 아이 등에는 땀띠가 많이 나서 아내와 파우더를 발라주곤 했다. 내가 등을 모로 세워주면 아내는 파우더를 발랐다. 밤이 되면 아기 울음소리에 깨곤했는데, 옆 창고 같은 방에서 쪽잠을 자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가 깼을 때 분유도 먹여주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할 생각에 그냥 자리를 피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한테 아주 미안한 일이다.



개구리


왜 여름에 태어났니

두꺼비처럼 온몸 땀띠 두르고

하루 종일 머리맡 모빌 보며

혀 낼름 재채기 쿨룩 


낮에 자느라 밤마다 

청개구리처럼 울어대고 

울다 지치면 엄마 품에 안겨

젖 먹다 짧은 동면에 들고


꿈속에서 나비 잠자리 잡고

토끼 거북이 종달새 쫓고

해도 보고 달도 보고 별도 보고


그렇게 달과 별 지고 

다시 해 뜨고 해 뜨고



모기장 속에서 새록새록 자는 아이의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지구의 반을 자른 것 같은 그 곳에 해와 달과 별이 아이를 지켜준다. 평화 그 자체다. 이때 모기 울음소리는 철 아쟁소리와 같다. 금방 위치가 탄로 나기에 수건을 돌돌 말아 벽에 붙은 침입자를 거침없이 제압할 수 있었다. 우주를 품은 아이의 명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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