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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12. 2021

[아빠의 문장 #4] 돌

해와 달과 별을 먹고 자란 큰 아이는 해가 바뀌어 어느덧 돌을 맞았다. 그 사이 아내의 뱃속에는 둘째가 자리를 잡았다. 큰 아이 돌잔치는 시골에서 하기로 하고 1997년 6월 어느 토요일 김제역에 도착했다.


군대에서 마침 휴가를 나온 막내동생이 우리를 반겼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역사 옆 보라색 등나무 꽃 아래서 사진을 찍었다. 동그란 챙이 있는 하얀 모자를 쓴 아이는 삼촌과 나, 아내 품으로 옮겨다녔다.


아내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큰 아이를 안고서 카메라를 응시했다. 아이는 큰 눈을 동그랗게 떴고, 뱃속의 둘째는 무슨 일인가 하고 까치발로 바깥 세상에 귀를 댔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위해 음식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렸다. 색동 한복에 족두리를 쓴 아이는 돌잡이로 연필을 쥐었다.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는 내내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사진관에서 만삭의 몸으로 큰 아이를 안은 아내와 여름 남방을 입은 내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돌사진을 찍어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돌처럼 마음에 걸렸다. 




유월의 등나무 아래

엄마는 베이지색 원피스

아빠는 옅은 하늘색 남방

너는 동그란 모자

우리 격포바다로 갈까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채석강 층층 바위에 새기고 싶어

너를 환영한다고

넉달 후면 나올 아이까지 

깍지를 까면 보라색 콩이 

줄줄이 나올것 같은

여름 등나무 아래서



시골 기차역 화장실 앞에는 어김 없이 등나무가 있는 시멘트 벤치가 있다. 앉으면 엉덩이가 아프지만 한편으로 시원하기도 하다. 포도송이처럼 줄줄이 매달린 등나무 보라색 꽃 아래 우리는 잠시 앉아 있었다. 그 사이 기차가 몇 대 오고 가고, 나는 간이터미널에서 부안 격포로 가는 시외버스를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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