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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13. 2021

[아빠의 문장 #5] 윤아

그로부터 4개월 후인 10월에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는 작명을 하는 곳에서 이름을 받아왔고, 둘째는 내가 직접 지었다. 이름에 빛날 윤(潤)자를 넣어줬다. 이름처럼 둘째는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둘째는 산통이 시작되고 나서 얼마 안돼 세상에 나왔다. 오후 5시쯤 병원으로 가서 7시 30분쯤 첫 울음을 터트린 것 같다. 내가 아내에게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고 말했더니 이게 또 몹시 섭섭했던 모양이다.


아이가 빨리 나왔던 늦게 나왔던 다 같은 고통의 무게였을 터인데, 나는 그것을 잘 몰랐다. 한마디로 아빠로서 공감능력이 부족했다고나 할까. 괜한 소리를 해가지고 평생 '세치 혀의 짐'을 달고 산다.


첫째가 오후 6시쯤 병원으로 가서 다음날 새벽 12시 30분쯤 태어났으니 7시간 가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상황에서 둘째가 그보다 산통 시간이 줄었다고 "빨리 나왔다"고 하는 것은 정말 눈치 없는 짓이다. 


반성하고 또 반성할 일이다. 몸이 약한 아내가 해를 걸러 아이를 둘 낳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다정다감 하지도 않은 남편 곁에서 홀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때 아내의 사진을 보면 우울해 보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걸 잘 몰랐고, 얼마나 힘든지 살가운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실제로 아내는 그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연애 시절 수서동에서 살았던 아내를 만나고 심야 좌석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기억이 난다. 창동 자취방에 돌아와서 밤새 편지를 쓰고, 다음날 전화로 읽어주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갔나.



윤아


숱이 무성한 머리

톡 튀어나온 배꼽

오동통한 턱과 볼살

엄마 생각해서

세상에 빨리 나왔지

잘 울지도 않고

태어나자마자 점잖은

속이 깊고 깊은

우리 윤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둘째를 낳은 후 힘겨워 하는 아내의 어깨를 꼭 안아주고 싶다. 울던 아이들도 울음을 뚝 그치고 엄마 아빠의 다정스런 눈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다. 둘째의 눈망울도 더 반짝반짝 빛이 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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