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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14. 2021

[아빠의 문장 #6] 쌍문동

둘째가 아직 걷지 못하고 개구리처럼 누워 버둥거릴 때 첫째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없어 벽을 잡고도 자주 주저 앉던 아이였다. 벽에서 손을 떼는 것을 두려워 하더니 어느 순간 홀로서기를 했다.


아내와 나는 그런 첫째를 보면서 박수를 쳤다. 둘째도 이불에 누워서 개구리 헤엄으로 손뼉을 친듯 하다. 해가 바뀌어 1998년 어느 봄날, 우리는 아이 둘을 데리고 집 근처 4.19국립묘지로 산책을 갔다.


아내가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보내 사은품으로 탄 유모차에 둘째를 태우고, 첫째는 경호원처럼 유모차 옆을 잡고 걸었다. 나는 신혼여행 때 입은 베이지색 티셔츠, 아내는 긴 치마에 인도풍의 모자를 썼다. 


봄볕이 가득한 4월의 공원은 눈이 부셨다. 우리는 잔디밭에서 노는 두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부지런히 담았다. 그때 둘째가 뭐가 샘이 났는지 첫째의 볼을 꼬집었다. 아빠의 독수리 렌즈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우리들의 쌍문동 시절은 저수지 오리가족처럼 평화로웠다. 안정적인 직장과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이 있었으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IMF의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회사에서도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다.


회사 업무에 지쳐있던 나는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사표를 냈다. 당시 한창 인기를 끌었던 PC통신 하이텔에 정보를 제공하는 IP사업을 준비하면서 일산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그때부터 고생의 시작이었다.



쌍문동


버스정류장 앞 정보석 가게 지나

오십 걸음 걸으면 큰 전봇대

맞은편에는 자그마한 빵집

사잇길로 우리 첫 보금자리가 있었지

두 아이가 선물처럼 우리에게 왔고

첫째는 걷자마자 계단을 기어올라 

이층으로 가서 천연덕스럽게 놀았지

아이를 찾으러 동네를 다 뒤졌는데

행여 매가 채갔나 하늘까지 바라봤어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보내준

유모차를 탄 둘째는 언니 볼을 꼬집고

4월의 봄볕이 우리를 감싸 안아줬지

정보석 동네빵집 전봇대 모퉁이길

폐업 딱지가 붙은 대로변 아기용품점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릴 것 같은

바보를 사랑한 평강공주의 신혼



쌍문동 시절을 생각하면 박라연 시인의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가 떠오른다.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혼방에서 편지를 쓴다"로 시작하는 풍경이 우리와 많이 닮았다. 단칸방이었지만 거기서 회사 사람들 30여 명 집들이를 치렀다. 아내의 고모까지 오셔서 손을 거들어줬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곳에서 모든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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