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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17. 2021

[아빠의 문장 #8] 구두

일산에서 여름과 가을을 보내면서 둘째의 돌을 맞이했다. 돌잔치는 우리 가족끼리 오붓하게 치렀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둘째 돌잔치를 제대로 차려주지 못한 것이 내내 미안하고 마음에 걸린다.


그해 가을이 가기 전 산음휴양림 반달곰 방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통나무집에서 구절초 꽃을 보고 잠자리를 쫓고 밤하늘 별을 봤다. 아이들은 움직이는 모든 것에 반응을 한다. 엄마아빠의 눈깜박임까지도...


하던 일이 여의치 않아 고향 근처 전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전주에 살 집을 마련하고 1998년 12월 초 일산을 떠났다. 이사를 하기 전 의정부 사는 친구 가족과 송추가마골에서 아쉬움의 갈비탕을 먹었다.


생활비를 아끼고자 지방으로 내려갔으나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동네 친구가 "동창 김 아무개가 구둣방을 하는데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돈도 벌고 글 소재도 될 거 같아 권리금을 얼마 주고 들어갔다.


동백장이라는 예식장과 목욕탕을 같이 운영하는 곳 옆에 구둣방이 있었다. 거기서 거의 1년 가까이 구두 닦고 수선하는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었다. 지금도 내 구두는 내가 닦는다. 


손님 중에는 00파 조직원들이 단골로 왔다. 그들은 오전에 구두를 맡기고 목욕탕에서 씻고, 세탁소에서 맡긴 양복을 찾아 입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약간 긴장했는데 나중에는 적당히 친한 사이가 됐다.


구두를 닦는 동안 밖에서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재판에 관한 얘기다. 반 합법적인 사업들을 하기에 변호사를 써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내용들이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보르헤스의 '장밋빛 모퉁이의 남자'에 나오는 칼잡이들이 아니다. 연장을 쓰는 철기시대가 가고 바야흐로 화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동백장 시절은 나중에 짧은 소설로 기록하려고 한다.


동백장에서 나름 괜찮게 돈을 벌었다. 서울에서 00신문이 취재를 오고, 지역 라디오방송과 케이블방송에도 출연을 했다. 나를 알아본 건달들도 더 공손해졌고,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구두를 닦으러 부러 찾아왔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전주에서의 생활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전주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보고 덕진공원에서 연꽃구경을 한 것도 잘 모르리라. 공원 매점에서 부라보콘을 사서 먹은 것도 사진을 봐야 알겠지.



구두


평생 순종 속에 살아 온 소는 죽어서도 주인의 명을 따른다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을 하든 도대체 발설하는 일이 없다

간혹 구두를 닦다 보면 깔창이 말려있거나 한쪽 굽이 심하게 닳아있다

소의 혀로 간언을 하거나 뒷걸음치며 발버둥친 흔적이다

누구나 신발장 속에 나를 위해 울어주는 소 한 마리 키우고 산다



동백장에서의 1년은 소가죽 울음소리를 듣고 살았다. 하지만 우리 소가족의 울음소리도 들어야 했다. 1999년 11월 옛 직장 선배의 부름으로 00일보에 다시 입사를 하게 됐다. IMF가 끝나는 시점에 다시 짐을 싸서 의정부에 거처를 마련했다. 전주 동백장시절을 묵묵히 감내해 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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