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저녁꽃 Nov 03. 2021

[아빠의 문장 #19] 물놀이

2001년 여름은 무척 뜨거웠다. 아이들을 데리고 태릉 선수촌 옆 푸른동산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그 안에 사격장도 있고 놀이시설이 있어서 한나절 쉬기 좋았다. 


민소매를 입은 아이들은 새카맣게 탔다. 그래도 물 속에서 튜브를 타며 신나게 놀았다. 그때에는 취사가 가능해서 고기도 굽고 라면을 끓여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파트 단지에 정기적으로 장이 열리곤 했는데, 큰 대야에 개구리 장난감을 팔고 있었다. 건전지를 끼우고 스위치를 누르면 물 속을 이리저리 헤엄치는 것이다. 아이들이 졸라서 하나 샀는데 처음에는 잘 움직이더니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멈춰버렸다.


그해 여름 휴가는 시골로 갔다. 짐을 풀고 낚시 장비를 챙겨서 아이들 삼촌과 함께 길을 나섰다. 부안 격포 바닷가를 구경하고 동진강 다리에서 고기를 잡았다. 하지만 의욕만큼 고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김제 망해사에 들러 절 구경을 하고 심포항에서 백합조개를 샀다. 시골집 마당에 불을 피우고 철망에 조개를 구워 식구들과 함께 먹었다. 아버지와 어디 놀러가서 고기를 구워먹은 적이 없으니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야외만찬이었다.


다음날은 지리산휴양림에 가서 차가운 계곡물에서 발을 담갔다. 아이들은 분홍색 수영복에 수영모를 쓰고 신나게 튜브를 타고 놀았다.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놀다가 잠시 볕을 쬘 때만 나무탁자에 앉곤 했다. 저녁엔 감자를 쪄서 먹으며 모닥불을 피운 채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을 바라봤다.


어머니가 싸주신 음식들을 차에 잔뜩 싣고 아이들은 뒷좌석을 펴서 재운 채 귀가길에 올랐다. 대전 유성 쯤을 지나는데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타이어가 털털 거리는 소리가 났다. 1차로를 달리다 서서히 갓길로 차를 세우고 보니 앞 타이어 오른쪽이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하마터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그 중에도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차를 대전 유성구 어느 자동차공업사로 견인을 했다. 직원이 바퀴를 이러저리 살피더니 "휠이 망가져서 차를 놓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내일 출근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이 상태로는 운전하면 위험하니 주말에 와서 차를 가져가란다. 처음에는 그러마 하고 했다가 생각해 보니 외지 차량이라고 덤태기를 씌운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고가 나도 좋으니 그냥 운전하고 갈랍니다" 하고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 차는 아무런 이상이 없이 잘 굴러다녔다.



물놀이


태릉 푸른동산 야외 수영장

슬라이드는 탈 수 없었지만 튜브로도 충분해

장난감 개구리처럼 분홍 오리 두 마리 

큰 대야 속을 둥실둥실 떠다녀

태양열 건전지를 몸에 달았나 지치지도 않아

구름이 햇빛을 가려야 잠시 밖으로 나와

삶은 감자 껍질을 야무지게 벗기지

마당엔 모닥불이 타오르고 하늘엔 별이 총총

자동차 바퀴가 터져도 세상 모르고 쿨쿨

그게 너희들의 사는 방식이니 어쩌겠어

어디로 견인해 가도 모를, 그해 여름




살다보면 가끔 촉이라는 게 있다. 시골을 출발할 때 딴 때와 달리 '오늘은 100km 이상 밟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대형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골집 마당 자갈에 차를 세워둔 것이 화근이었다. 뜨겁게 데워진 자갈의 날카로운 부분이 타이어에 균열을 낸 것이었다. 2001년 여름은 뜨거웠지만 아이들은 세상 모르게 잘 산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자서전 편지 #18] 가장 아름다운 인연의 '꼭지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