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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Sep 25. 2020

실패한 첫 번째 인턴십

창피한데 소중하다.


낯선 땅에서, 첫 인턴십 지원


캐나다에 간지 얼마 안 됐을 때, 인터넷을 뒤지다가 빅토리아 다운타운에 작은 국제개발협력 NGO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아프리카 잠비아에 교육 사업을 하는 NGO였는데, 막 국제개발이나 협력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지라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지난 몇 달간 어학원과 홈스테이에서 익힌 생존 영어 덕분에 자신감이 붙었던 걸까, 나는 무작정 인턴십을 하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지원은 했지만, 사실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경력이랄 것도 뭣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회학을 3년 정도 공부하다 온 휴학생이었고, 봉사활동이나 학보사 같은 몇 가지 활동을 했다는 것 외에는 덧붙일 내용도 없었다. 무엇보다 캐나다 국민도 아니고, 말이나 제대로 알아들을까 걱정되는 어학연수생이었으니까. 그러니 이 사람들이 왜 날 뽑겠는가.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답장이 왔는데 덜컥 인터뷰를 보자는 거다. 그렇게 빅토리아 다운타운의 작은 건물에서 생애 최초로 인턴 면접을 봤다. 면접 공부고 뭐고, 그런 건 전혀 해본 적이 없어서 내 답변은 매우 단순하고, 솔직했다. “왜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은가요?” 라는 대표의 질문에 “이 일에 관심이 있는데, 여기 와보니 이런 단체가 있더군요. 나중에 혹시 관련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 인턴십 경력이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라고 답했다. 맞다. 너무 솔직했다. 당혹스러워하던 대표님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인터뷰를 봤으니 내 영어 실력이 사무직 업무를 보기에 많이 부족하고, 내 내용물(!)도 필요한 업무 역량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셨을 텐데, 대표님은 “어학원이 끝나는 오후 시간에 오라”며 출근 일을 정해줬다. 나를 맡아줄 ‘사수’ 같은 직원도 소개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어린 학생이 이 업계에 관심이 있다니, 인터뷰도 보러온 김에 뭐라도 배울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뭐, 무급이니까.’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많이 부족한 새 인턴


그렇게 시작한 첫 인턴십. 사실 인턴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자원봉사자에 가까웠다. 업무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영어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어학원이 끝난 오후에나 출근했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도 상당히 자유롭게 출퇴근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후 2시 출근, 5시 반 퇴근’ 같은 스케줄을 향유하는 건 나밖에 없었다.     


일은 쉬운데 어려웠다. 그러니까 객관적인 업무 강도는 쉬운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억’ 소리 나게 어렵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영어가 엄청 큰 장애물이었다. 인터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서 잘 몰랐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내 영어 실력은 정말 턱없이 부족했다. 업무 문서에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당시 내가 보던 서류는 ‘woman empowerment’ 같은 단어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2000년대의 카시오 전자사전만으로는 ‘empowerment’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캐나다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다. 서류 하나 이해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다른 일이 제대로 됐을 리가 없다. 작성해야 하는 이메일의 내용이나 형식도 너무 낯설었다. 인턴십을 시작할 때 생각했던 장밋빛 미래와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직원들도 나도 서로 난감하고 민망한 상황이 이어졌다.     


국제개발협력은 경제, 사회, 문화, 언어, 의료, 과학, 교육 등 다양한 학문과 분야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일이다. 그래서 관련 문서를 읽을 때, 그 분야 업무의 특성이나 어휘에 익숙하지 않으면 이해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니까, 내가 겁 없이 도전한 첫 인턴십은 애초에 당시 내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거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았다. “국제개발 일을 배우고 싶어요, 무급으로 일하면서 배울게요!” 하는 어린 애를 돌려보내지도 못 하고, 당시 직원들이 날 보며 얼마나 난감했을까.      


그런데도 직원들은 어떻게든 나를 일에 끼워주기 위해 애써주었다. 분명히 못하고 있고, 많이 느린데도 기다려주고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아서 맡겨주었다. 지역 슈퍼마켓 체인에 펀딩 이메일을 보낼 때면, 자기는 이렇게 보냈다며 자신이 보냈던 이메일을 참고하라고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시민교육이나 국제개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면 수업 보조 역할로 함께 참여해서 상황을 보고 익숙해질 수 있게 해줬다. 공부할 겸 읽고 참고하라며 아프리카 국제개발 관련 자료들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고맙고, 민망해서 자꾸 웃음이 난다.


나중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국제개발학 수업을 들을 때, 예전 첫 인턴십 사무실에서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던 자료들이 기억났다. 그때는 한 문장에 모르는 단어가 서너 개씩 있었는데. 몇 년 뒤에 한국도, 캐나다도 아닌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줄, 그리고 그때와 비슷한 문건을 하루에도 수십 장씩 읽어내야 할 줄 그땐 몰랐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정말 아무도 모른다.      




도전 실패, 하지만 얻은 것들


하지만 이런 노력과 도움에도 불구하고, 첫 인턴십 도전기는 조금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나는 몇 달간의 사투 끝에 인턴십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직원들에게 괜히 부담만 주는 것 같아 미안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기간을 정해두고 인턴 계약을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인사만 하면 언제든지 인턴십을 끝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그만두어야겠다고 말한 뒤 인사하고 나오던 날. 뭔가에 패배 선언을 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마주 보게 된 느낌이 들어서 많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내 첫 인턴십 도전은 3개월로 끝났다. 그래도 몇 달 끙끙거리는 동안 나름 즐겁고 뿌듯한 순간도 있었다. 많이 서툴렀지만 그래도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관심 분야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우선, 이 부끄러운 첫 도전은 내게 또 다른 도전의 문을 열어줬다. 인턴십 당시 관련 정보를 찾던 중 온라인을 통해 ‘국제개발협력 책 번역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이때도 여전히 내 경력은 별 볼일 없었으나, 인턴십을 하고 있다는 점이 지원할 때 좀 더 자신감을 준 것 같다. 겁도없이 번역에 참여하고 싶다며 지원서를 냈다. 감사하게도 프로젝트 팀은 내 신청을 받아주었고, 그렇게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책을 국내에 번역 출판하는 과정에 함께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소외된 90%와 함께하는 디자인>, <유엔공식가이드북> 등 두 권의 책을 더 공동번역 했는데, 책 표지 날개에 나오는 공동 번역자 소개글을 다시 보면 그 동안 내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볼 수 있어 신기했다.      





첫 번째 책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에는 그냥 이름 옆에 “사회학과 재학”이라고만 나온다. 그 당시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말은 저것뿐이었다.      


두 번째 책인 <소외된 90%와 함께하는 디자인>에서는 소개 글이 좀 더 길어졌다.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 번역에 참여했고, 캐나다에서 NPO 활동을 했다.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이주, 개발, 인권 등의 주제에 관심이 있다.” 첫 번째 책 번역에 참여했던 것과 캐나다 NGO에서의 활동 경험이 들어있고, 학부도 졸업한 상태다. 이주, 개발, 인권 등의 관심 주제도 있다.  

    

세 번째 책 <유엔공식가이드북>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이주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NGO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주와 개발 관련 석사를 수료했으며(당시 졸업 전이었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특수한 이주사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인권위원회의 정기 간행물 <인권>의 2020년 5, 6월호에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의 정구도 이사장을 인터뷰하고 기고한 글 말미에는 “정 작가는 국내외 NGO에서 5년간 국제개발협력과 이주민 지원 업무를 맡았습니다.”라는 소개글이 실렸다.      


3권의 국제개발협력 책을 국내에 번역 소개하고, 이주와 개발 관련 석사 공부를 하고, 국내외 NGO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기까지. 그 시작에 바로 저 첫 인턴십이 있었다.          




국제개발협력이 무슨 일인지 생각하게 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첫 인턴십은 내게 국제개발협력 이라는 ‘멋지지만 무슨 일인지는 통 알 수 없는’ 이름 아래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는지 알게 해줬다.      


1) 멀리 떨어진 나라의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시간과 능력을 쏟아 붓는 사람들이 있다.     


2) TV에는 식량과 구호물품을 나르는 사람들 같은 현장의 모습이 주로 나오지만 사실, 이런 모습이 가능하려면 안 보이는 곳에서 사무직들이 엄청 열심히 일해야 한다. 현장직만큼이나 본부 지원직도 중요하고, 여기에 매우 많은 품이 들어간다.     


3)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을 시행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     


4) 당시의 나처럼, 그냥 단순히 돕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이런 상태의 인력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후원금을 내는 게 더 도움이 된다.     


5) 업종명에 ‘협력’이 들어가는 이유가 있다. 형편 어렵고 시스템 없는 나라의 상황을 개선시키려면 수많은 존재들의 협력이 필수다. 마음 따뜻한 후원자만 있어도 안 되고, 능력 있는 전문가만 있어도 안 된다. 돈이 없으면 우선 전문 인력이 모이기도 어렵고, 비전문가들이 아무 계획 없이 돈만 뿌려대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 된다.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하고 후원금을 모집하기 위한 직원도 필요하고, 이렇게 모인 돈을 제대로 쓰기 위해 경영지원팀과 회계 직원이 필요하다. 사업이 다 끝난 뒤 회계 감사도 필수다. 결국 ‘국제개발협력’에는 수많은 ‘전문 인력’과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 동시에 필요하다. 단체의 취지에 공감하고 남을 돕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야 일이 돌아간다.     


6) 저개발국 사람들을 돕는 방법이 단순히 밥 먹이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우물을 파고 학교와 병원을 짓는 일에서부터, 병을 치료하고 소녀들을 교육시키는 일 까지 엄청 다양한 방법이 있다.     


7) 이 일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달렸다.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계뿐만 아니라 도움을 받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생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마음 뜨거워서 하는 봉사가 아니라 정말 삶이 달려 있는 일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망가뜨리게 될 수도 있는,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다.




첫 실패, 좋은 실패         


이런 점들을 배워가면서 관련 분야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대학원을 마친 뒤 국제개발협력 업무를 하는 연구소와 NGO 등에서 일을 하게 됐다. 아프리카 말라위 산골 마을 사람들의 백내장 수술이 이들의 삶에 경제적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조사하러 가기도 하고, 스와질랜드 여학생들을 위한 생리대를 지원하거나 화장실을 짓고, 수도관을 연결하기 위한 펀딩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베트남 소녀들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이들을 위한 미술봉사단을 꾸리기도 했다. 국내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 이주민들을 위한 의료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업을 하고, 이를 위해 후원을 요청하는 글을 쓰고, 학교나 세미나 등에 외부 강의를 다니며 여러 사람들에게 국제개발협력에 대해 알려주는 일. 어느새 내 일은 캐나다에서 접했던 첫 인턴십 업무들과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호기롭게 나섰지만 대차게 망했던 첫 걸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창피하고, 부끄럽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내 첫 인턴십 도전은 완전 대 실패였으니까. 첫 인턴십이 나만큼 대차게 망한 사람도 몇 없을 거다. 하지만 부끄러운 마음을 최대한 다독이며 다시 생각해보면,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어렵고, 답답하고, 부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 도전은 내 삶의 아주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수많은 것들을 배우고, 새로운 도전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준 셈이니 결과적으로 ‘좋은 실패’였다.     


좋아하기가 참 힘든 녀석이지만, 그래도 실패를 너무 미워하진 말자. 어쩌면 우리가 알아보지 못한 성장의 씨앗일 수도 있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일지도 모른다.  


.... 물론, 그래도 역시, 아직도 첫 인턴십 이야기를 하는 건 엄청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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