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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May 22. 2023

길을 떠나야 보이는 것들

해외에 나가도 없으면 못 사는 것: 한식, 인터넷, 하나님

 

예전에, 여행 경험이 많지 않았을 때는 이제 막 발견하기 시작한 새롭고 신기한 세상이 좋아서 여러 외국을 다니며 일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마 나이가 들어서 그럴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다. 그때보다 나이도 들었고 체력도 더 떨어진 것 같다. 하지만 온전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때, 내 진심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첫 하숙집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혼자라고 느꼈던 적이 드물다. 주변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부엌이나 거실에 들어서면 늘 하숙집 식구들과 마주쳤다. 과자나 간식을 꺼내러 온 막내 앤지와 부엌 카운터에 기대 수다를 떨고, 밀크티를 타러 온 장남 데이빗과 아시아 문화나 영어 발음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동물 박사인 둘째 딸 로지와 고양이 얘기를 나눴다.      


집에는 동물도 많았다. 앤지가 키우는 토끼에게 쫓겨 도망 다니기도 하고, 로지의 고양이를 무릎에 올려보기도 했다. 주말이면 주인아주머니랑 거실에서 옛날 영화를 보며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갔다. 건강식품에 관심이 많은 아주머니 덕분에 건강식품 박람회가 열렸다 하면 모든 부스를 함께 돌며 샘플을 쓸었다. 다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주인 부부와 자녀 셋. 거기에 나까지. 여섯 명이 모여 살던 집은 참 정겹고 따뜻했다. 나는 그 집에서 아홉 달을 살았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떠나기로 했던 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아주 이상한 기분 때문이었다. 캐나다에 온 지 7개월에서 8개월 차였던 거 같은데, 평소처럼 하숙집 식구들과 어울리는데도 이상하게 즐겁지 않고, 심지어 조금 우울했다. 방에 혼자 박혀 있거나 산책 나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속이 시렸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친절하고 잘해주는데 왜 나만 갑자기 이럴까. 점점 홈스테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힘들었고 괴로웠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을 속으로 괜히 트집 잡았다. 연일 뚱한 얼굴을 하고 돌아다니니 하숙집 식구들도 나를 어색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어학원에 다른 홈스테이를 알아봐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홈스테이를 떠나기 며칠 전. 막상 떠난다고 하니 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 사람들 덕분에 9개월 동안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는데. 추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래도 이미 떠나는 건 결정되어 있으니 이제 바꾸긴 늦었다.      


나는 컴퓨터를 뒤져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모아 프린트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오려서 노트에 정성껏 붙였다. 사진 아래에 코멘트도 달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트에는 사진이 빽빽이 들어찼다.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겨봤다. 처음 해변에 놀러 갔던 날, 뒤뜰에서 일광욕하던 날, 다 같이 모여서 바비큐를 했던 여름 저녁, 추수감사절 음식 한다고 북적거리던 부엌,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만들어 준 케이크와 애플파이, 막내 앤지와 피자를 만들었을 때, 데이빗이랑 찬장을 뒤져 야식 라면을 고르던 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던 날, 로지의 고양이를 처음 만져보던 날, 같이 뒷마당의 사과를 따던 날 등등. 9개월간의 추억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진을 다 붙인 뒤, 마지막 장에 편지를 썼다. 한 장은 영어로, 마지막 한 장은 한글로. 사실 한국어 편지는 그 사람들이 읽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고 썼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진심을 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적었던 문장 중에 내가 적어놓고 왜 그런 말을 쓴 건지 아주 오랫동안 이해가 안 가던 말이 있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다.    

 

“당신들과 가족이 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떠나려고 해요.”     


쓰면서도 이해가 안 가고, 그 뒤에도 한참 동안 왜 저런 말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막상 쓰고 난 뒤에는, 혹시나 다음에 온 하숙생이 한국인이어서 저 내용을 해석해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혼자 민망해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저 내용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났다. 그때와 나이도, 가치관과 목표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날. 나는 그때의 내 상태에 대해 말하는 거 같은 문장을 찾았다. 정지우 작가의 책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에서였다.  

   

그 속에서 나는 참기 힘든 소외감과 외로움 같은 걸 느꼈다여기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들이 매일같이 삶을 일구어 나가고, 기쁨을 나누고, 때론 슬퍼하거나 절망하는 그 모든 것들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 속해 있지 않았다문득 내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읽으면서 바로 알았다. 내가 겪었던 이해할 수 없던 순간과 닮은 감정을 말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오래전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당신들과 가족이 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그제야 알았다. 당시 내가 외로웠다는 걸. 그렇게 다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즐거운 경험만 하면서도 나는 외로웠다. 즐겁고 행복할수록 그들과 내가 속한 곳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때 적은 저 문장이 사실 조금 부정확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그 사람들과 정말 가족이 되고 싶었다기보다, 그들과 내 세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껴 외로웠다. 거실 피아노로 찬송가를 치면 불편해하던 식구들, 집 근처에서 찾을 수 없었던 갈만한 교회,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가족 구성과 가치관. 


차라리 적당히 좋아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함께 살며 정을 듬뿍 줘 버린 사람들의 세계에 내가 함께 속해있지 않다는 느낌에서 오는 그 간격이 슬펐다. 그들과 더 친밀해질수록,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과 나의 세계가 다르다는 게 더 명확해졌다. 그 감정이 일종의 외로움과 슬픔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캐나다에서의 2년 반 생활을 마칠 즈음. 나는 망설임 없이 귀국을 선택했다. 당시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거의 모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캐나다로의 이민, 영주 체류를 결심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캐나다에 2년 반이나 머물렀는데 영주권 신청에 관심도 없는 나를 캐나다 현지인들도 외국인 친구들도, 심지어 한국에 계시는 아버지도 신기하게 여겼다.     


캐나다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캐나다는 정말 좋은 나라였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에서 한국행이 너무 당연했다. 그때는 그 생각이 너무 확고해서 딱히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 확신이 저 때 느낀 감정들 때문임을, 그 외로움 때문임을 안다.    

  

영국에서 석사 공부를 할 때도 그랬다. 나는 비자 기간이 남아있음에도, 논문을 제출한 뒤 일주일 만에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능력을 인정받고, 좋은 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직장을 얻는 것까지. 그렇게 오랫동안 꿈꿔온 것들을 차근차근 이뤄갔지만, 그 순간순간마다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는 걸 발견했다. 피상적이고 화려한 꿈보다 진짜 나에게 더 필요한,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나는 함께 하나님에 대해 말할 가족이 필요했고, 어릴 때부터의 추억이 고스란히 쌓인 교회가 필요했으며, 교회 뜰을 함께 뛰어다니며 자란 친구들이 필요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교회가 내 삶에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낯선 지역에서 출석할 좋은 교회를 찾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평생 외국을 여행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가족의 곁에서 안정감을 누릴 때, 익숙한 교회 친구들과 어울릴 때 내가 더 행복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취직 기회, 영주권 기회를 두고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내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가 진짜 바라는 삶이 뭔지 그 진심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온 뒤에야 비로소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을 때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지 알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행길에 오른 뒤, 그동안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일상이라는 막이 여러 방법으로 얇아지고 떨어져 나갔다. 때로는 아주 빠르고 강렬하게, 때로는 느끼지도 못할 만큼 아주 천천히. 그렇게 익숙한 나를 낯설게 보며 배워갔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과의 결합이라는 세계관 안에서 삶을 이해했다.      


나고 자라 평생 살았던 땅에서는 몰랐던 진심을, 그리고 나를, 낯선 땅에서 확인하는 건 조금 우습고 또 신기한 일이다. 완전히 낯선 곳에 섰을 때, 원래 세상에 속해있는 내 삶의 존재감이 더 선명해졌다.   

  

내 사고가 이 결론에 닿을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나를 여행하게 하셨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길 위에 서서, 새롭고 다른 세상을 온몸으로 겪으며, 생각하고, 묻고, 인지하게 하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에야 지나온 모든 우연의 순간이 사실 대단히 세밀히 연결된 인도하심의 한가운데였다는 걸 알았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는 방식은 참 다양하다. 각 사람에게 가장 좋은, 맞춤형 방법을 사용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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