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탐 May 22. 2023

정말로 보호하시는 하나님

아닌 밤중에 집에 폴리스라인이 쳐져도 쉴 구멍은 있다.


캐나다 생활도 1년이 넘어갈 즈음. 

나는 두 번째 하숙집에 머물고 있었고, 여전히 뮤지엄 성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날은 밤 근무를 서는 날이었다. 밤 근무는 대개 뮤지엄에 특별 이벤트가 있을 때 한다. 일반 관람 시간은 보통 저녁 5시까지지만, 미국에서 크루즈 관광객이 들어오거나 따로 대관 예약이 잡히면 밤에도 특별히 문을 열었다. 이런 날은 퇴근이 늦어서 집에 오면 밤 10시가 넘을 때가 많았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특별 대관 행사가 있었고, 일이 늦게 끝났다. 그날따라 버스도 원래보다 한참을 늦게 왔다.     


그렇게 이런저런 일이 겹쳐 귀가가 늦은 날.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가정집만 즐비한 동네는 불이 다 꺼져 조용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유독 공기가 서늘하고 고요했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걸었나. 이제 슬슬 하숙집이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집 앞에 경찰차가 서 있었는데, 경찰 두 명이 차에 기대서 하숙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순간 놀라서 걸음이 멈췄다. 내가 그들을 발견함과 거의 동시에 그들도 나를 봤다. 내가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경찰들이 그쪽으로 오라는 듯 까딱까딱 손짓했다.      






주춤, 주춤. 오라니까 가긴 하는데, 여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했다. 집 앞에 다다르니 더욱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하숙집 건물이 노란 줄로 여러 번 둘러쳐져 있었다. 폴리스 라인이었다. 이 집에는 나를 빼고도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노란 선 너머 불 꺼진 집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이지? 왜 집 앞에 경찰이, 아니 그 전에 왜 폴리스 라인이?      


혼란스럽게 하숙집과 경찰 얼굴을 번갈아 보던 내게 경찰들은 이 집에 사냐고 물었다. 캐나다에서 경찰과 말을 해보는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조금 긴장한 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가까이 서 있던 경찰관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대강이나마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정말 대강.     


“여기서 살인미수 사건이 있었어. 그래서 지금은 들어갈 수 없어.”     


......뭐요?     


대단히 현실성 없는 소리가 들렸다. 살인 미수 사건이라니? 우리 집에서?      






내가 살던 하숙집은 미취학 어린이를 키우는 주인 부부 한 쌍과 유학생 셋, 그리고 착하고 멍청한 셰퍼드 한 마리가 사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여기 어디에 살인미수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가? 하지만 경찰은 그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난데없이 벌어졌다는 살인 미수 사건, 집 앞에 처져 있는 폴리스라인, 그리고 집 앞을 지키고 있는 경찰까지. 태어나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왔는데 집에서 살인미수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릴 들을 확률은 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 잠깐, 살인미수 사건이랬잖아. 그러면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요? 다들 무사해요?”

“다들 무사해.”     


경찰은 간단히 답했다. 하지만 역시 그 이상 자세한 내용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면 혹시, 들어가서 몇 가지 물건만 가지고 나와도 되나요?”    

 

나는 2층 내 방 창문을 보며 물었다. 사실 무슨 정신으로 이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뭘 가지고 나오고 싶은지도 몰랐다. 당장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니 막연히 뭔가를 챙겨 나와야 할 거 같았다.     


“안 돼. 안에 핏자국도 있고. 들어가며 안 돼.”     


당연히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방금 사건이 일어나서 폴리스라인 쳐 놓은 곳에 민간인을 들여보낼 수는 없을 테니까. 물어보면서도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인가 했었기에, 바로 알겠다고 답했다. 머리가 멍했다. 경찰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사실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어쨌든 집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니까, 우선 알겠다고 답하고 돌아서서 무작정 큰길을 향해 걸었다. 차분하게 잘 대화한 거 같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당황해서 진짜 아무 말이나 한 거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 밤에 무작정 큰길로 가는 게 아니라 경찰에게 밤을 보낼만한 안전한 곳을 물어보거나 안내를 부탁했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멍한 머리로 그저 큰길을 향해 걸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큰길에 닿았다. 넓은 찻길 위로 바람이 차게 불었다. 그제야 좀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충격이 지나가니 막막함이 찾아왔다. 


와. 하나님 저 당장 이 밤에 어디로 가죠?      


이 동네가 치안이 크게 위험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길에서 노숙해도 될 정도는 아니었다. 가게는 이미 다 닫아서 어디 들어가 있을 곳도 없었고, 알고 있는 숙박 시설도 딱히 없었다. 대중교통은 벌써 다 끊겼고, 당시 비용 문제로 스마트폰 대신 피처폰을 쓰던 때라 어디 인터넷에 검색해보거나 예약 앱을 쓸 수도 없었다. 


그렇게 오도가도 못 하고 있는데, 저 멀리 패스트푸드점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혹시 24시간 하는 곳일지도 모른다. 햄버거 하나랑 커피 몇 잔이면 아침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겠지! 반가운 마음에 뛰어가 문손잡이를 확 잡아당겼다.      


덜컹! 


아...... 문이 잠겨있다.    

  





문득 뒷덜미가 서늘했다. 어느새 새벽 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사방이 고요했고,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는 패스트푸드점도, 넓은 도로에도 인적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오직 나만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님, 어디로 가죠? 어떻게 해요? 


겁먹은 아이가 저도 모르게 엄마를 찾듯, 나는 무작정 하나님을 불렀다. 초조한 마음이 정신없이 하나님께 물었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에 눈이 갔다. 문득 평소 친하게 지내던 J가 생각났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늦었다. 평소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J는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J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이 가는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벌써 잘까? 만약 전화를 안 받으면, 누구에게 전화하지? 만약 아무도 전화를 안 받으면 해 뜰 때까지 어디서 버티지?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 한 음이 끝날 때마다 곧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하는 안내 음성이 나올 것 같아 속이 덜컥거렸다. 하나님, 제발 J가 전화를 받게 해주세요.     


뚝.      


전화가 끊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아, 안 돼....... 

절망하던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다행히 J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사정을 듣자마자 바로 자기가 사는 홈스테이로 오라고 말해줬다. 콜택시를 타고 J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속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안심이 되니 그제야 얼굴이 조금 풀렸다. 괜히 평소보다 택시 기사님 팁도 더 드렸다.  




   

J의 하숙집은 시내에서 꽤 떨어진 교외에 위치해 있어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J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놀라고 당황스러웠던 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방 한편을 내어준 J와 그녀의 하숙집 가족들에게 얼마나 고맙던지. 나는 그렇게 따뜻한 잠자리에서 편히 쉬며 그 밤을 보냈다.     


다음 날, 하숙집 주인아주머니와 연락이 닿아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 전 늦은 밤. 다들 막 침대에 누운 상태였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주인아저씨가 먼저 나갔고, 그 뒤로 아주머니와 아이가 따라 나갔다. 문밖에 선 사람은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아는 얼굴에 주인아저씨가 문을 열어 주었고, 그렇게 사건이 벌어졌다. 그가 갑자기 주인아저씨를 공격한 것이다.      


침입자는 방심하고 문을 연 아저씨의 얼굴에 곰 스프레이를 뿌렸고, 비틀거리며 아저씨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다행히 정신을 잃지 않은 주인아저씨가 반격에 나섰고, 둘은 현관에서 부엌까지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격투를 벌였다. 부엌 바닥은 피와 발자국으로 엉망이 됐다. 다행히 주인아저씨가 범인을 제압했고 곧 신고받은 경찰이 들이닥쳤다. 사건은 미수에 그쳤고 범인은 체포됐지만, 주인아저씨가 많이 다쳤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듣는 내내 현실감이 없었다. 곰 스프레이와 망치라니....... 


그런데 얘기를 듣다가 순간 소름이 끼쳤다. 집에 침입해서 주인아저씨를 공격한 범인이 사실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주인아주머니의 친구였던 그 남자는 집에 자주 찾아와 주인집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이와 놀아주거나 와이파이 연결 등의 집안일도 도왔다. 내 방에도 와이파이를 연결해준다고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던 아저씨였다. 믿기지 않았다. 그 친절하고 조용하던 사람이 사람을 망치로 쳤다고?      


나중에 듣기로는 그 아저씨가 예전에 머리를 심하게 다친 것과 그날의 이상 행동이 연관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하숙집 가족들에게도, 그들을 공격한 아저씨에게도 모두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날 일을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뭐 하나 놀랍지 않은 게 없다. 물론 사건 자체도 경악스럽지만, 가장 놀라운 건 내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위험을 하나하나 피해 갔다는 사실이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하숙집 가족들이 막 잠자리에 든 다음이었다. 평소 부부와 아이가 잠들던 시간을 생각해보면 대략 10시 전후였을 듯한데, 이는 내가 평소에 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대다. 만약 내가 원래 귀가하던 시간 그대로 집에 왔다면 집 앞에서 망치를 든 범인과 마주치게 됐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날은 유독 일이 늦게 끝났다. 일이 그렇게까지 늦게 끝났던 건 성에서 일했던 모든 기간을 통틀어서 그날이 유일했다. 이뿐만 아니다. 버스도 평소와 달랐다.


그 당시는 정류장 전광판도 없고 아직 2G폰을 쓸 때라, 버스 도착 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분기별로 배포되는 버스 시간표 책자를 봐야 했다. 나는 이 책자를 들고 다니며 일정을 확인했는데, 지역 버스들은 대부분 이 시간표를 잘 맞춰 다녔다. 도시가 작아서 차량도 많지 않고 크게 교통체증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 일정에 맞게 잘 오던 버스가 그날따라 너무 늦는 것이다. 하도 안 와서 나는 내가 시간표상의 요일을 착각한 줄 알았다.     


그렇게 내가 정류장 벤치에 앉아서 ‘오늘 왜 이래. 일도 늦게 끝나고, 버스는 또 왜 이렇게 안 와’라며 투덜거리고 있을 때. 하숙집에서는 사건이 벌어지고, 경찰이 들이닥치고, 폴리스라인이 쳐졌다. 그때 주인집 가족과 다른 하숙생 둘까지 모든 식구가 다 집에 있었다. 그날따라 귀가가 늦었던 나만 그 횡액을 피했다.    

  

이뿐만 아니다. 경찰이 폴리스라인만 덜렁 쳐 두고 가지 않고, 그 앞을 지키고 있었던 덕분에 대략적으로나마 상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고, 늦은 시간에 전화를 받아준 J 덕분에 길에서 밤을 지새우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그 늦은 시간에 시내에서 교외로 나가 준 택시 덕분에 -작고, 밤 시간 인구 이동이 거의 없는 그 지역에서는 꽤 드문 일이다- 꽤 멀리 떨어진 J의 집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때는 그저 정신이 없고 당황스럽기만 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신기하다. 하나님을 알고 상황을 다시 보면 그 모든 과정이 단순한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스무 개 정도의 나라를 다니는 동안 위험하거나 가슴 철렁한 순간이 없지는 않았다. 이번처럼 갑작스러운 사고로 어쩔 줄 몰라 할 때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 여행이 무사히 끝날 수 있었던 건, 여행의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나 혼자 두지 않으셨던 하나님 덕분이다. 하나님은 나를 세밀하게 보호하셨다.


처음 본 낯선 세상이 신기해서 정신 놓고 뛰어다니는 동안 넘어지지 않게 옆을 따라다니며 지키셨고, 부주의로 어딘가에 찔려 울면 얼른 안아 올려 상처를 봐주셨다. 무서워 떨면 내 앞에 든든히 서서 숨게 해주셨고, 갑자기 마주한 절망의 웅덩이가 너무 넓어서 어쩔 줄 모르면 내 머리털 하나, 마음 한편 다치지 않게 보듬고 안아서 성큼 건너 뛰어주셨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하나님을 알았다. 주일학교에서 배우고, 제자훈련에서도 배우고, 성경학교에서도 수련회에서도 배웠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을 잘 몰랐다. 정확히는, 지식으로만 알면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좋으신 하나님의 ‘좋으신’이 대체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지 만분의 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여행하는 동안 나는 말씀으로만 알던 하나님을 감각으로 생생히 인지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말씀으로 찬양으로 수없이 듣고 부르던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나는 분명히 체감할 수 있었다. 시편 121편은 단순히 비유법 같은 게 아니라 진짜였다. 문자 그대로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라서 성경이 그렇게 쓰고 있는 거였다.     


여행하는 모든 순간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시며 자신이 내 보호자이자 애정의 대상임을 매번 다양한 형태로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는 하나님은 늘 대단히 상냥하고 세밀하며, 섬세하고 다정했다. 여행이 계속될수록 나는 배워서 지식으로만 알던 하나님을 삶으로 만나고, 더 깊이 알아가고 있었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의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난을 면케 하시니

그가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2권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fascinating/46



이전 10화 길을 떠나야 보이는 것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