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알려주는 마음의 위험신호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입에서도 종종 흘러 나오는 말이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하고 이율배반적인 소리를 하나 싶지만
사실
신경 써야 할 것도 고민해야 할 것도 너무 많은 요즘 옷을 잘 입어야 한다는 것도, 옷을 잘 사야 한다는 것도 무척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옷이 많건 적건
이건 모든 여자들이 외출할 때마다 전투적으로 겪게 되는 일이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이 두 가지가 MIX(섞인)된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일단 이런 친구를 만나면
아묻따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자주 연락하고 불러내고 시간을 보내주어야 한다.
그 친구는 지금
자각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우울증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천재지변이나 특정 사유로 집이 없어진 게 아니라면 이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니 말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113485
제니퍼 바움가르트너는
'옷장 심리학'에서
이 밖에도 다양한 여성들의 패션으로 심리를 진단하고 치료한 사례를 모아 소개하였다.
모두 9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1. 미친 듯이 쇼핑하는 사람들 - 충동을 못 이기는, 쇼핑 중독증
2. 옷을 도저히 못 버리겠어! - 과거에 집착하는, 저장 강박증
3. 그녀는 왜 검정 옷만 입을까? - 활력을 잃어버린, 패션 우울증
4. 너무 헐렁하거나 아니면 터질 것 같거나 - 자신의 몸을 부정하는, 외모 혐오증
5. 섹시해 보이는 게 잘못이야? - 어른의 몸을 감당하지 못하는, 과다 노출증
6. 소녀와 할머니 사이에서 - 나이 드는 걸 두려워하는, 연령 망각증
7. 파자마를 입고 출근하다 - 시간, 장소, 상황 무감각증
8. 명품, 명품, 명품이 좋아! - 자신감을 잃은, 브랜드 집착증
9. 아줌마들은 왜 같은 모양의 파마만 할까? - 희생을 강요받는, 패션 무력증
이 중에서 다른 색으로
표시된 3, 4, 9번에 대해서 그녀의 넓은 식견에 패션 인문학 과외서의 사견을 조금 더하여 이런 우울증 탈출을 위한 따라 하기 쉬운 해결점을 첨부해본다.
3. 그녀는 왜 검정 옷만 입을까? - 활력을 잃어버린, 패션 우울증
은 사회집단이나 직장 혹은 가정의 상황이
마치 고인물처럼 정체되어 있어서 변화할 수 없을 때 겪게 된다고 한다.
사실 이런 경우는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단, 상황과 환경 때문이라서 잘 이겨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패션 인문학 과외서 TIP.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불편하기 마련이다.
익숙한 것에 간단하게 한 가지씩 더해보면 어떨까 싶다.
밝은 색상의 액세서리나 스카프나 신발로 포인트를 준다던지 아니면 이너웨어만이라도 밝은 색상을 입는다던지 하는 것으로 말이다.
혹시 친구가 이렇다면.. 작은 색조 메이크업(립스틱)이나 원색적인 액세서리를 어울릴 것 같다며 선물해보면 어떨까 싶다. 가끔 혼자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도 옆에서 조금씩 동기를 부여해주면 가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옛 선조들의 지혜를 빌리자면 '풍경(wind bell)을 달아보는 것이다.
정체된 것에는 나쁜 것이 깃든다고 생각했던 옛 선조들은 바람이 불어 풍경이 울리면서
정체된고 불경한 것들이 이 풍경의 흔들림과 소리로 흩어진다고 믿었다.
액세서리의 딸랑거림과 풍경의 흔들림으로 우울한 기운이 흩어져 날아가 버리면 좋겠다.
4. 너무 헐렁하거나 아니면 터질 것 같거나 - 자신의 몸을 부정하는, 외모 혐오증
외모를 중시하는 요즘 같은 사회에서 '여자는 뚱뚱하면 안 된다' 같은 강박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젊을 때는 모르지만 나이를 점점 먹고 출산을 하게 되면서 얼굴과 몸이 체중에 따라 변하면서 외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몸을 혐오하며 큰 사이즈의 옷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아무도 자신의 몸을 알아볼 수 없는 옷으로 스스로를 덮어버린다.
패션 인문학 과외서 TIP.
미혼이라면 우선 6개월 정도의 시간을 두고 5년 혹은 3년에 한 번씩
3kg 정도 감량해보는 걸 추천한다. 과격한 다이어트가 아닌 나이가 듬에 따라 떨어지는 신진대사량에 맞게 체중을 조금씩 줄여주는 것이다.
'어쩜 너는 몸이 한결같다'라는 말을 머지않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임신 때문에 체중이 변한 경우는 사실 호르몬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 번이 넘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임산부들의 멘탈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일단 SNS의 날씬쟁이들과 온갖 잡지를 언팔로우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출산 전이라면 온라인 쇼핑이던 직접 구매던 출산 후 몇 개월 동안 입을 '여성'의 옷 사기를 권한다.
지금의 모습부터 꾸미기를 시작해 버릇해야 예전으로 돌아갈 의욕도 생기기 마련이다.
혹시 출산 후 너무 바쁘다면 베프들에게 SOS를 요청해라.
돌 선물 애 선물 다 필요 없다. 내가 입을 옷을 차라리 싼 거라도 좋으니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해서 보내달라고 해라. 제발.. 혼자 모든 걸 떠안은 떡진 머리 애엄마 하지 말고 말이다.
엄마는 신이 아니다. 기본적인 여성의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한다.
쇼펜하우어
9. 아줌마들은 왜 같은 모양의 파마만 할까? - 희생을 강요받는, 패션 무력증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자신보다는 엄마의 자리가 중요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런 마음 상태가
자신을 꾸미는 모든 것에 둔감해지고 마냥 귀찮은 것들이 되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가 덜컥 갱년기와 남편의 퇴직이 찾아오게 되는데
금전적 변화부터 신체적 변화를 함께 겪으면서 심각한 패션 무력증을 앓게 된다.
패션 인문학 과외서 TIP.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미용실' 같다.
일전에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어하던 지인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갈수록 그녀의 머리가 짧아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집 안에서 기분 전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동네 미용실의 머리 다듬기 수준의 헤어컷을 2주 ~ 4주마다 하면서 우울한 마음을 달랜다고 하였다.
가서 미용사 분이랑 신나게 수다를 떨며 두피 마사지 겸 머리도 감고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며 헤어컷을 하고 나면 1시간 정도 훌쩍 지나가 있고 그런 후에는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들 웅크리고 있을 아지트도 필요하지만
털어내고 올 아지트도 필요하다.
동네에 그런 아지트 같은
미용실을 하나 섭외에서 제일 한가한 시간을 물어보자. 그리고 그 시간에 방문해서 편안하게 그녀처럼 2주~4주에 한 번씩 머리를 다듬으며 기분 전환하는 것부터 우울증 털어버리기를 시작하면 좋겠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대나무 숲에 가서 하지 말고 미용실에서 하자.
가서 나사 하난 빠진 사람처럼 깔깔 데고 실없이 웃어 버리자.
그러고 나면 이제 집에 와서 옷장을 드려다 볼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뭐든 천천히 해보자.
볼테르는
인생의 고통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하늘이 두가지 선물을 주었으니
하나는 '희망'이요,
다른 하나는 '잠'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그는 '웃음'을 첨가했어야 했다.
칸트
파올로 코엘료가 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했다'를 보면
우울증에 걸린 여인이
스스로를 꾸미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귀찮아지면서
샤워도 하지 않는 날들을 보내다 결국 침대에서 대소변을 보게 되는 장면까지 나온다.
스스로 가꾸지 않고
일주일 내내 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이런 패션 현상은 그냥 '별거 아니겠거지' 하고
지나칠 일이 아니다.
차츰차츰 아주 천천히
그런 우울감들이 쌓여서 벌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양창순 정신과 전문의는
'국내에선 패션 치료가 아직 보편화하진 않았지만 의사들이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옷차림을 참고하고는 있다.' 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특정 유명인들이나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관심이 조금 부족해진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 요즘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혹시
일주일 내내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아닌지 살펴봐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뭐든 같이 해보면 좋겠다.
브런치에 실린 글들을 모아서
'옷으로 마음을 만지다'를 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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