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by 깨알쟁이

핑계를 대본다

비가 오고 날이 흐려서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기

힘들었던 거라고


날씨 때문에 피곤해졌다는 핑계

비가 와서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는 소심한 핑계


눈이 부쩍 건조한 계절이 왔다

인공눈물을 넣지 않아 뻑뻑해졌으면서

충분히 눈을 깜빡이지 않았으면서

가을이 와서 이렇다는 핑계를


눈이 뻑뻑해 감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고

내가 게으른 게 아니고

눈을 건조하게 한 계절 탓이라고

아름다운 가을에게 핑계라는 옷을 입힌다


감정이 요동쳐 하루에 한 번씩

눈물 콧물 마를 시간 없이 흘러냈는데

이건 또 호르몬 때문이란다

잠을 충분히 잔 나는 이렇게 예민할 리 없다고

배에 맞은 주사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나의 눈물의 이유를 호르몬에게 덮어 씌운다


나에게 이제 속이 좀 편해졌는지 물어본다

날씨와 계절 그리고 호르몬에게

핑계라는 옷을 입히니 좀 낫냐고


네 훨씬 편해요

다 나 때문이 아니라서 괜찮은 것 같아요

내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해요

다 내 잘못 같지 않아서 좋아요


핑계 네 덕분에 나는 여전히 부지런하고

나는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고

나는 평온한 사람으로 살아남았어

핑계야 고마워

덕분에 내가 살았다

화, 금 연재
이전 06화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