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돼.

by 깨알쟁이

새로운 주치의 교수님으로부터 첫 진료를 받고 왔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렀다. 1차 이식에 실패하고 세상 무너진 것처럼 며칠 동안을 축 처져 있다가 병원에 가니 오히려 상태가 호전됐다. 혼자 상상하고 고민만 하던 것들을 교수님과 상의하면서 시원하게 풀렸기 때문이다.

우선 교수님이 바뀌면서 3층에서 2층으로 진료실을 옮겼다. 덩달아 초음파 봐주시는 선생님들, 간호사분들, 수납 데스크에서 안내해 주시는 직원분들도 바뀌었다. 접수를 하니 간호사님이 호명하여 첫 안내를 받았다.


"OO님,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교수님 진료받으시는 거 맞으시죠? 동결 이식 준비하시는 거죠?

와, 배아가 엄청 많은데요? 잘 되실 거예요. 잘해보아요. 초음파 보시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해 주세요."

생각지 못한 긍정적인 스몰 토크로 기분이 좋아졌다. 맞아, 나 동결배아가 무려 19개였지. 채취도 47개나 했고 배아 등급도 그리 낮지 않아서 다시 채취할 일도 없어.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다 잘 될 거야 반드시.


이번에는 초음파실에서 이름을 불러 방으로 들어갔다. 이식 준비 중이냐고 물어보셔서 그렇다고 했다. 초음파실에서는 나의 세부 진료 기록이 안 보이는지 "아가가 엄마 고생시키지 않고 한 번에 딱 붙었으면 좋겠다! 그렇죠?"라고 밝게 말씀하셨다. "아,, 사실 지난주에 이식한 게 안 돼서 이번에 두 번째 도전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니 초음파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두 번째군요! 그럼 더 잘 될 거야! 아가야~ 엄마는 준비가 되어 있단다. 마음 편히 오자."


진료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따뜻한 말들이 나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업무적인 이야기만 하던 안내 데스크 선생님들과 아무 말 없이 초음파만 봐주시던 선생님들도 좋았는데, 송구스럽게도 바로 잊힐 정도로 이곳의 온기가 내 마음속에 제대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최악의 상황만 상상해 오던 나를 반성케 하여 온기가 용기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진료실 앞 화면에 내 이름이 떴고 새 주치의 교수님을 대면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앞에 다른 환자분들과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문 밖으로도 흘러나와 '상당히 밝은 분위기네? 교수님이 원래 저렇게 밝고 웃음이 많으신 분이셨나?' 생각을 하며 들어갔는데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희망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지난번에 얼리 테스트기에는 희미한 2줄이었다고 쓰여 있네요."

"네, 8일 차에 한 게 희미한 두 줄이었는데 다른 것들은 다 1줄이더라고요. 그러다가 피검사 음성으로 떠서.."

"그러면 되려다가 아깝게 안 된 거라고 볼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지금 남은 배아 개수들도 워낙 많고, 저번에 이식한 건 5일 배아고 나머지는 6일 배아들인데 BB등급이라서 나쁘지 않아요. 잘 될 것 같아요. 많이 고생 안 하실 것 같아요."

"아 정말요? 저 이번에 PGT 검사해야 하나 싶었는데.."

"제가 봤을 땐 2차까지는 그냥 가셔도 될 것 같아 보여요. 대신 지난번에는 자연 주기 이식으로 했으니 이번에는 다른 호르몬 요인들을 차단하는 인공 주기 이식으로 해보시죠."

"아, 알겠습니다."

"지금 자궁 내막 두께도 4mm라 아주 좋고, 2주 후에 바로 이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만 안 좋았어도 설 연휴에 걸려서 애매할 뻔했는데 상태가 좋아서 타이밍도 딱 맞네요."

"아,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네, 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한 번 더 외래 오셔서 초음파 보시고, 그다음 주에 이식하는 걸로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배아 등급도 나쁘지 않고 배아 개수도 많았다. 자궁 내막에도 문제가 없어 바로 2차 이식에 도전하는 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고 하셨다.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될 것 같다. 나만 너무 걱정하고 스트레스받지만 않으면 다 잘 될 것 같다. 포기하지 말고 용기 내자. 더 활기차게 살아보자. 더 이상 푹 꺼져있지 말고!




keyword
이전 20화마지막 인사하러 다녀오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