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를 떠나는 주치의 선생님께 건넨 아가 선물
지난주 금요일 주치의 교수님을 마지막으로 뵈러 병원에 다녀왔다.
1차 피검 수치가 20만 넘었어도 2차 피검하러 가는 건데, 비 임신이라 병원에 갈 이유가 없어졌음에도 다음 주면 출산 휴가 가시는 교수님 얼굴 뵙고 마지막으로 고마웠다고 인사드리고 싶어서 예약까지 하고 갔다. 계속해서 간호사분들이 "오늘 뭐 때문에 방문하신 거예요?"라고 물을 때마다 내가 너무 F인가 민망하긴 했지만 나의 결심에는 후회가 없었다.
당연히 1차 이식에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힘들어했던 것은 아마도 임신이 한 번에 안 됐다는 사실보다 그다음 차수를 교수님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섭섭했던 것 같다. 항상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대해주셨던 교수님 같은 분을 내가 또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교수님께 마지막으로 무슨 선물을 건네며 인사드릴까 한참을 고민했다. 보통 임신에 성공하여 난임 병원 자체를 졸업하는 사람들은 쿠키나 커피 상품권 등을 드린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교수님을 잠시 보내드리는 것이고 간호사분들과는 계속 함께한다. 그리고 교수님도 임산부이기 때문에 건강을 해치는 것은 드리지 않고 싶어서 한참을 고심했다. 쿠키? 안 돼. 임당 테스트에서 걸리시면 어떻게 하지. 음.. 그렇다면..!
곧 태어날 아기의 선물을 사기로 했다!
주치의이기 전에 출산을 앞둔 산모에게 딱 맞는 선물은 사실 아가의 선물. 아가 선물을 사들고 난임 병원에 들어가는 건 처음인데 나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이런 것도 불편해하실 분이 계실까 하여 쇼핑백을 가방 뒤로 숨기려고 애써 노력했다. 다행히 내가 방문한 시간에 다른 분들이 많이 계시지 않았지만.
선물을 사들고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혼자 주문을 외웠다. '눈물 흘리면 안 돼. 잘 참자. 분명 나만 울 거잖아. 나만 슬플 거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교수님은 울 리가 없다. 수많은 환자들을 봐왔고, 나보다도 더 오래 봐온 사람들도, 더 따뜻한 관계를 이어간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말이다. 나만 F고 정이 많고 교수님을 거의 짝사랑한 것처럼 마음이 애절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눈물을 더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동안..'이라는 단어만 잘 피해서 말하자고 되뇌었다. 그 말을 하면 이제까지 1년 동안의 시간이 휘리릭 머릿속을 지나가 자책과 후회, 아쉬움, 섭섭함이 한 번에 밀려와 또 울 것 같았단 말이다.
그렇게 진료실 앞 LCD에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떴고 진료실 문이 열렸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눈물이 그렁그렁한 교수님의 얼굴이었다. 아니 교수님이 날 보고 울먹거리신다고?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말이다.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시나리오였다. 그렇게 나도 눈물을 참아내지 못하고 내내 울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겨우 그칠 수 있었다.
교수님과 내가 마음이 동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굉장히 편해졌다. 교수님을 잘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오늘 2차 피검할 필요 없어서 안 와도 되는데) 그냥 왔어요. 교수님 마지막으로 보려고요."
"아이고.. 바쁜데 이렇게 귀한 시간 내서 여기까지 와요. 흑흑 OO님 이제 정말 잘 될 일만 남았어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우리 1년 동안 봐왔잖아요. 산전검사부터 해서 벌써 그게 작년 이맘때더라고요."
"그러니깐요.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이제 막 준비 시작해 볼 단계였는데.. 이번에 이렇게 해봤으니 OO님 이제 다음에 바로 시도하면 금방 될 거예요 정말!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니까."
"감사해요 교수님. 아, 이 선물 받아주세요! 뭐 사드릴까 고민했는데.. 맘에 드실지 모르겠지만 예쁜 색으로 골라왔답니다."
"아이고, 진짜 너무 감사해요. 그동안 병원 다니고 오래 대기해서 진료 보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그리고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서 보러 와주시다니 정말 감사해요 OO님"
"별말씀을요! 제 마음입니다. 안에 편지도 있다고요! 저 교수님 휴가 돌아오시기 전에 임신 성공해서 제 좋은 소식 공유하고 싶어요! 칭찬글에 남겨둘 테니 제 이름 기억해 주세요."
"당연하죠 OO님. 글만 봐도 누군지 알뿐더러 제가 OO님을 어떻게 잊겠어요."
마음은 통한다. 환자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당사자도 주치의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진정성 있게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다시 한번 감동하게 되었다. '괜히 오지랖 아닌가? 그냥 출산휴가 가면 가는 거지 내가 뭐라고 선물까지?'라면서 갈지 말지 고민했던 것들이 무색해지도록 너무 잘했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진료실 문이 열리자마자 눈물을 보이셨던 교수님의 얼굴을, 같이 고개를 숙이며 같은 마음으로 눈물을 참아냈던 그 마음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제 내일이면 다른 교수님으로부터 진료를 봐야 하는데 아직도 어떤 교수님께 받아야 할지 선택하지 못했다. 따스한 선생님을 찾아갈지, 이제는 성공률을 높여줄 선생님을 찾아가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되지만 다 잘 될 거라고 분명 곧 잘 될 거라고 믿으면서 힘내보려고 한다. 난 잘 될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