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이제 나에게도 기회가 오는 건가?

by 깨알쟁이

오늘로써 동결 배아 이식한 지 8일 차. 어제도 집에 있는 임신테스트기 하나를 뜯어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보겠다고 검사해 봤지만 역시나 단호박 한 줄. 왜 사람들이 '단호박' 한 줄이라고 말하는지 너무 잘 알게 되었다. 오른쪽 선이 진하고 굵고, 왼쪽에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렇게 깨끗한 흰 바탕이더라. 누가 마치 화이트로 지워놓은 것처럼.


어차피 착상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테스트기에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식 당일날 병원에서는 테스트기는 100% 정확하지 않다고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궁금하고 불안한 걸 어떻게 한담. 결국 오늘도 밖에서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올리브영에 들러 얼리 테스트기를 하나 구입해 왔다.


근데 오늘은 좀 달랐다. 집에서 크게 힘든 활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좀 지끈거리고 아팠다.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엇 오늘 오랜만에 두통이 오네?' 이 정도 느낌이었다. 그래도 기대는 안 하려고 애써 노력을 하며 마음과는 달리 손은 재빠르게 테스트기 박스를 개봉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제랑은 확실히 달랐다..! 검사 기계 자체가 다르기도 한 게, 집에 있던 테스트기는 얇은 종이로 되어 있고 얼리도 아닌 그냥 임신 테스트기다. 오늘 사 온 것은 흔히 아는 임신 테스트기 제형인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고 얼리 테스트기로 조금 더 빨리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인데, 오른쪽 C 쪽에 선이 진하게 생기기 전에 왼쪽, T 부분이 몽글몽글 하얗게 뭉쳐있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오른쪽에 선이 굵게 생기면서 왼쪽에는 정말 아주 흐릿한 선이 보였다....! 진짜로...? 진짜인가??????

나에게는 머나먼 일일 것 같았던 2줄이 이렇게 흐리게라도 보였다니?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기쁘고 기대감이 차올랐다. 근데 괜히 설레발치다간 되려던 것도 안 된다는 것을 36년 동안 깨달아왔기에 아직 남편에겐 말하지 않고 조용히 서랍에 보관했다.


사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꿈 하나를 꾸긴 했다. 지인 3명 정도와 함께 어딘가에 갔는데 돌이 아직 안 된 아가가 하나 있어 우리가 돌아가며 안아주고 있었다. 나는 아직 아가를 잘 안지 못해서 친구의 품에 안긴 아가의 뒷모습을 어루만졌다. 파스텔 그린색 내복을 위아래로 맞춰 입은 남자아이의 포동한 다리가 너무 귀여워서 부들부들하다며 만져봤다. 발바닥은 각질도 당연히 없고 말랑말랑 순두부 같았고 발목이 쏙 들어간 대신 일자 무다리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 보드라움에 행복하게 잠에서 깨서 출근하는 남편의 커피를 내려줬다.


요즘 계속 발이 차서 '아 나같이 혈액순환 안 되고 발 찬 사람은 안 되려나? 나도 막 7,8차까지 가면 어떻게 하지? 나 그렇게까지 버틸 수 있을까?' 혼자 오만상상을 다 하던 참이었다. 착상 이후 남들이 겪는 증상도 하나도 없어서 이틀 후 병원에서 피검사하고 받는 문자에는 '비임신입니다'라고 쓰여있겠지.. 라며 일단 최악부터 생각해 두기 바빴다.

근데 신기하게도 오늘 얼리 임테기로부터 아주 흐릿한, 소위 매직아이 두줄을 확인한 후 남편과 저녁을 먹었는데 이상하게 아까 왔던 두통이 온몸 근육통으로 번지는 느낌이 들었다. 흡사 생리 전 날이나 생리 당일날 몸 상태와도 비슷한데, 날이 추워서 그런지 으슬으슬한 게 딱 몸살 기운 같아서 '설마?'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주, 지지난주만 해도 어느 기업에 최종 면접을 보고 나서 '아 면접 붙으면 어떻게 하지? 이식이 이번 차수에 안 되어야 좋은 건가?'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더랬다. 뭐가 더 중요한지 알면서도 불안한 현실 앞에 있어서 그런지 취업을 살짝 더 바랐던 순간도 있었다. 이식을 준비하면서도 이식이 한 번에 안 되어도 괜찮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잠깐 했었다. 하지만 오늘 저녁부로 완전히 그 생각이 깨졌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일도 회사도 아닌 가족임을 다시 깨달았고, 그에 맞게 내 인생을 다시 설계하면 되지! 도전 의식도 불끈 생겨버렸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병원 가서 피검사하는 날이 정말 이제 40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내일은 날씨가 무척 춥다고 하는데 최대한 몸 사리고 몸에 해가 되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요즘 계속 그래왔지만 무리하지 않고 집안일도 쉬엄쉬엄 일도 쉬엄쉬엄 하면서 잘 지켜내야지. 지켜내는 연습을 시작해야지! 감사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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