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올 줄도 몰랐고 이렇게 힘들 줄도 몰랐어요.
"어느 병원에서 하고 계세요?"
"시험관 몇 차세요?
"마지막 이식은 언제 하셨어요?"
"배아는 몇 개 넣으셨죠?"
"주사는 맞아보셨어요?"
"마지막 생리일은요?"
"마지막 초음파는요?"
"피검사 결과는 어땠어요?"
"가다실은 언제 몇 차 맞으셨어요?"
"의뢰서 보여주세요 사진 찍고 다시 드릴게요"
"주사 가져오신 거 들고 이 쪽으로 따라오세요."
지난 토요일, 이식 전에 진행한 피검사에서 착상이 되는 호르몬 수치가 낮게 나와 질정을 타이유 주사 (엉덩이 근육 주사)로 바꾸면서 내 일상이 또 바뀌었다. 가뜩이나 출근한 지 얼마 안 돼서 퇴근 시간도 아직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시기인데, 매일 시간을 내어 병원에 방문해 주사를 맞아야 하는 큰 일정이 생겼다.
이식 날, "이제부터 주사로 바꿔봐야겠어요."라는 말을 듣고 겁이 났던 건 단순히 통증과 부작용이었다. 근육주사고 지용성 주사라 잘 뭉치고 매일 한쪽씩 번갈아가면서 맞아 엉덩이가 돌처럼 딱딱해진다고 하여 '돌주사'라는 별명을 가진 타이유 주사. 오히려 타이유 부작용으로 임신 초기에 힘들어하는 산모들의 후기도 봤고, 엉덩이의 통증이 허벅지와 종아리까지도 내려와 마비 증상을 느껴봤다는 분들의 후기도 읽었다. 그래서 나는 '아, 나는 순탄하게 시험관 하다가 애기 생길 줄 알았는데.. 오만한 생각이었구나.' 싶었고 굉장히 막막했다.
실제로 오늘 4번째로 양쪽 2방씩 맞아보니 느낌이 참 묘하다. 주사 바늘이 들어갈 때에는 별 느낌이 없는데 하루가 지나 다음날이 되면 그날부터 아프기 시작하다. 또 그날이 지나고 다음날이 괜찮으면 또 다음날에 근육이 저릿거린다. 걸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힘주게 되는 엉덩이 근육들이 점점 뭉쳐가는 느낌이다. 어제는 잠을 자다가 새벽 5시에 허벅지에 쥐가 난 듯한 느낌을 받아서 깼다. 내가 우려했던 타이유 주사의 무서운 통증과 비로소 만나게 되었다.
근데 사실 주사 자체가 아파서 힘든 것보다 매일 병원에 찾아가 주사를 놔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 일단 벅차다. 퇴근 시간만 되면 회의를 소집하던 탓에 나의 저녁 시간도 온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데 병원도 마찬가지다. 예약이 안 될 수도 있고, 예약을 안 하고 갔는데 접수가 마감이 될 수도 있는 거였다. 그렇다고 몇 시에 갈 수 있을지는 회사에서 노트북 시스템 종료를 하기 전까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니까.
월요일에는 회사 근처 병원 중에 이 주사를 놓아줄 수 있는 곳들을 2곳 찾아 전화해 보고, 언제까지 가면 맞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6시, 6시 반까지 오면 접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5시 반-6시에 퇴근하고 걸어가면 되겠군’ 생각하며 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아니 근데... 다섯 시에 갑자기 또 전체 회의를 소집하더니 그 회의는 갑작스레 진행된 것 치고 2시간이나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그 두 병원을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7시가 넘어 회사 건물로부터 겨우 빠져나왔다.
이때 나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왜 자꾸 내 퇴근 시간을 침해하는 거야? 난 지금 병원도 가야 하고 바빠 죽겠는데.. 내 일정 다 틀어졌어 짜증 나!'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오늘 질정으로 대체할까? 주사도 아프잖아. 아침에 질정을 안 넣긴 했는데 괜찮으려나?'
마치 천사와 악마가 유혹하는 것 같았다. 둘 다 악마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긴 하지만.
하지만 나 회의하는 동안 남편이 대신 알아봐 주고 전화를 돌려본 덕분에 9시까지 야간진료하는 병원을 찾았고 택시 타고 그 병원으로 향했다.
주사를 맞게 되어 참 다행이고 감사했지만, 불안하고 성가신 월요일 저녁이었다. 강제 야근도 싫지만 내 일정과 동선을 조정하면서까지 그 자리에 붙잡혀 있어야 했다는 것도, 그리고 그냥 집 가면 될 것을 주사 하나 때문에 퇴근 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동선 체크를 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화요일에는 다행히 칼퇴를 했고, 월요일에 찾아둔 병원들 중 한 곳을 찍어 걸어갔다. 한 30분쯤 걸었을까 병원 간판이 보였고 접수대에서 신규 환자 접수를 마쳤다. 아니 근데 이게 웬걸.. 6시까지 오면 분명 된다고 했는데 오늘은 접수가 이미 마감됐다고 못 본단다. 온갖 감정이 순간적으로 올라왔지만 들키지 않으려 주섬주섬 의뢰서랑 주사를 가방에 다시 넣고 황급히 나왔다. 괜히 서러웠다. 애초에 그럴 거면 접수하라고 하지를 말지.
그렇게 두 번째 병원을 찾아갔다. 다행히 환자도 적었고 간호사분의 간단한 문진 이후 원장님 뵌 후 바로 주사를 놔주셨다.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해?'
'이렇게 했는데도 안 생기면 나 어쩌지?'
호르몬 탓인지 온갖 서러움이 터져 눈물이 팡 터져버렸다. 아픈 것도 싫고 퇴근하고 집이 아닌 병원에 먼저 들러야 하는 것도 귀찮은데 말이다.
남편은 익숙한 듯 괜찮다며 휴지를 한 장씩 내밀며 담담히 나를 위로했고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충분히 문질러주었다.
그렇게 오늘로 돌주사를 맞은 지 4일이 되었다. 양쪽 엉덩이에는 2방씩 멍이 들어 있고 저릿하고 아프다. 오늘도 나는 회의가 늦게 끝나 7시 넘어 병원에 도착했고, 하마터면 진료 마감으로 주사를 못 맞을 뻔했는데 다행히 편의를 봐주셔서 무사히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만 놓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그런 환경에 있어도 나는 힘들어하고 불평불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오히려 지금이 잘 된 거라고, 감사한 거라고 다시 마음을 먹어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캄캄한 터널 속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그 가족으로부터 얻은 긍정적인 마음이다. 눈물이 나면 그칠 때까지 시원하게 울고, 다시 도전하는 거다.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