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수 하나로도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디테일한 태도의 차이.
지금 살고 있는 집 계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어 집 앞 부동산 사장님을 찾아뵈었다. 너무 당연한 걸 묻는 건 아닌지, 너무 쉬운 걸 물어 시간을 뺏는 건 아닌지, 나의 밑천이 드러나는 건 아닌지 고민되어 발걸음이 쉽사리 떼지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파트 공사 소리가 참을 수 없이 커지는 바람에 용기를 내어 계약서 파일과 수첩 하나, 음료수 2개를 사들고 부동산 문을 열었다.
사장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관된 스텐스로 맞이해 주셨고 본인이 1년 반 전에 건네주었던 계약서파일을 들고 온 나에게 어떤 것이 궁금해서 찾아오셨냐고 물으셨다.
다행히도 내가 생각하던 솔루션보다 훨씬 구체적인 답을 얻었다. 세입자의 입장에서 어느 시기에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은지, 현재 내 상황으로서는 여기에는 이걸, 저기에는 그걸 물어보라고 콕 집어 알려주셨다.
답변을 얻은 틈을 타 나는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감사한 마음을 쏟아내었다.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2년 전에 저희 사장님 아니었으면 이렇게 좋은 보금자리 구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진짜 감사합니다. 저희 다른 부동산 가보지도 않았어요. 첫 상담받고 '아 이제 어디 가야 하지?' 막막했는데 딱 좋은 타이밍에 다른 곳 가서 헤매지 않게 저희한테 좋은 기회주신 덕분에 좋은 집주인 만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부모님도 여러 부동산 다녀봤지만 서류 준비나 입주 프로세스 등 이렇게까지 꼼꼼하고 디테일하게 챙겨주시는 분은 아마 더 만나기 어려울 거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좀 tmi지만 저랑 남편, 그리고 남편한테 사장님을 소개해준 남편 친구분이랑 해서.. 저희끼리 사장님 별명을 지었어요. 갓**님이라구요!!! 진짜 저희한텐 정말 크나큰 은인입니다."
사장님은 내가 사들고 간 음료수부터 그리고 나의 이런 멘트(진심 500%)로 인해 나와 대화하는 내내 즐거운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심지어 '갓**님'이라는 별명을 말씀드렸을 때에는 "오늘 가서 남편한테 자랑해야겠어요! 와 진짜 너무 행복해요. 영광이에요!!"라고 찬사를 보내주셨다.
그에 나는 "오늘 일기에 꼭 쓰세요!" 라며 너스레도 떨었다^^
부동산 얘기는 아주 잠깐이고 1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사장님이랑 정말 많은 인생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이야기도 나누고 사장님의 따님과 사위 이야기도 해주시면서 끄덕이는 순간이 끊이지 않고 티키타카가 시원시원하게 이뤄졌다.
사장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본인은 참 사람 마음 얻는 법을 잘 아네요. 제가 그러니 계속 이렇게 붙잡고 이야기하고 있죠. 음료수 사 온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다 이러지 않아요. 그냥 대뜸 와서 물어보고 휙 나가고. 본인 손해 보는 건 하나도 안 하려고 하고 이익만 생각하잖아요."
"지금 벌써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게 사회생활을 참 잘하는 거예요. 원래 같은 말이라도 조금 더 따뜻하게 안부인사라도 한 마디 하는 게 나중에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르거든요. 너무 잘하고 있어요 정말."
"이미 본인은 사람 마음 뺏는 법을 너무 잘 알아요. 그렇지 않나요?"
참 감사했다.
그저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던 부분을 솔직하게 표현했고, 사장님이 건네주시는 이야기들을 진심으로 들어드렸고 또 나의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마음을 잘 얻는 법을 안다고 하셨다.
한 때는 회사에서 가스라이팅을 진하게 당하던 시절, 나는 내가 너무나도 형편없다고 생각한 기간이 있었다. 생각한 '적' 정도가 아니고 일정 기간 꽤나 길게 그렇게 바보같이 굴었었다.
'아 나는 사람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인가봐.'
'내가 그렇게나 눈치가 없었나?'
'내가 이렇게 일을 못하나?'
'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손만 벌벌 떨리고 그냥 내가 하면 다 틀릴 것 같아.'
'또 틀리겠지 뭐. 매니저라면 모름지기 알아야 할 부분들인데 나 또 모르는데 어떻게 해?'
'나 이 직급, 이 월급 받을 자격 있는 사람일까?'
'나 이 회사에서 가장 민폐 아닐까?'
'그냥 내가 먼저 나가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한번 지배하다 보니 뿌리를 내리고 악의 꽃을 피어내기도 했다. 아주 무서웠는데 걷잡을 수도 없었다.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냥 나 스스로가 계속 누군가에 의해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었다. 마케팅은 가스라이팅이라는 말까지 들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정도가 심했었다.
그러던 내가.. 다시 나의 본모습을 찾았고 그 본모습을 알아봐 준 사람을 만나게 되어 나는 다시 한번 감사한 하루였다.
나에게 극찬해 주신 사장님께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원래 어느 분야에서든 직업의식 투철하고 일 잘 하시는 분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근데 사실 몇 마디 말씀해 주시는 것만 봐도 다 느껴지잖아요. 한 끗 차이로 디테일하게 사장님 본업에 임하시고 또 이렇게 도와주시려고 하는 마음까지도 정말 너무 귀합니다. 진짜 진짜 감사드려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한 분으로부터 자신감을 얻은 하루였다.
오늘의 90분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사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