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로 시작한 공포의 일주일

by 홍성화

다 잊은 줄 알았다. 2018년의 그날을.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해 여름, 우리나라는 사상 최악의 폭염에 시달렸다. 물론 작년 2024년의 찜통더위가 2018년의 최장기간 열대야와 최고 온도 기록을 깨긴 했지만, 그전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폭염이었다. 폭염 강도로만 보면 2018년 여름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뉴스에서는 앞으로 인간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기후 변화가 일상이 될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여섯 살, 다섯 살, 세 살.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돌보는 일상은 그야말로 전쟁같았다.

밤에도 열대야, 아침부터도 푹푹 찌는 더위에 하루 시작이 두려웠다. 지긋지긋한 무더위가 하루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8월을 버텼고, 이제야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셋째가 감기에 걸렸다. 단순한 코감기였다. 며칠 약 먹고 쉬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 감기가, 백혈병의 시작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2018년 9월 10일, 월요일.
첫째와 둘째를 부랴부랴 어린이집에 보내고, 셋째와 동네 소아과에 갔다. 남편은 출근한 뒤였다. 전날, 불안한 마음이 종일 맴돌았다.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다가와 말했다.
“여보, ◯◯이가 이상해. 다리를 끌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잘 걷던 아이였다. 그런데, 셋째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나에게 오고 있었다.


이상한 조짐은 며칠 전부터 있었다.
9월 5일 새벽, 잠을 자던 셋째가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더 놀라웠던 건 전날 저녁에 왼쪽 목의 림프절이 탁구공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던 것.

깜짝 놀라 가족들에게 말했지만, 다들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침이 되면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새벽부터 이상했다.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물만 마셔도 토했다.

다이어리를 펼쳐 전날 먹은 것을 다시 확인했다. 애호박과 양파를 다져 넣은 계란찜에 밥을 비벼 먹였고, 후식으로 황도, 포도, 가래떡까지 다 잘 먹었다. 셋 다 똑같이 먹였는데, 이상하게도 셋째만 탈이 났다.

소아과에선 단순 감기라 했다.
목의 림프절이 부은 것도 감기로 인해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니 걱정 말라고 했다.

다만 열이 없더라도 계속 칭얼대면 해열제를 4시간 간격으로 먹이라고 알려주었다. 해열제에 진통 효과가 있으니 그렇게 하면 된다고.

나는 의사의 말을 믿고 그대로 따랐다. 낮에는 형들과 잘 놀았고, 밥도 곧잘 먹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낫겠지, 괜찮아지겠지 했다.

하지만 셋째의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밤마다 자주 깼고, 칭얼거림이 잦았다. 열은 거의 없었지만, 의사 말대로 해열제를 먹여 재웠다. 그러면 아이는 그런대로 잘 잤다.

그렇게 4일이 지났다.


9월 9일, 일요일 아침.
왼쪽 다리를 끄는 모습을 보자마자, ‘이건 감기가 아니다’
그동안의 염려가 확신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섭고, 두려웠다.

일요일이라 응급실밖에 갈 수 없어 하루를 더 기다렸다. 다음 날, 소견서를 받아 큰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동네 소아과 진료실에 들어서려는 순간, 셋째는 심하게 몸부림을 쳤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온몸으로 버텼다. 소아과 원장도 평소와 다른 아이의 행동에 놀라 곧바로 소견서를 써 주었다.

그러나 서울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받을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천안의 D 대학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소아과 의사는 고관절염을 의심했다. 감기나 바이러스 감염 후에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한 달 입원하면 괜찮아진다고 했고, 보통 3세에서 12세 사이의 남자아이에게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셋째가 딱 그 연령이었다.

입원과 동시에 피검사, 초음파, MRI가 진행됐다.
왼쪽 고관절에 물이 차 있었고, 맑은 액체가 나왔다고 했다. 다행히 화농성 고관절염은 아니라는 말에 안심했다. MRI 소견도 고관절염에 가깝다고 했다.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해서 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별거 아니겠지’ 그렇게 믿었다.

곧바로 항생제 치료에 들어갔고, 48시간 동안 항생제 반응을 보기로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셋째는 밤낮으로 통증을 호소했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해열진통제도 별 효과가 없었다. 나는 휠체어와 유모차에 번갈아 셋째를 태우고 병원 복도를 쉬지 않고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래야 겨우 5분, 10분을 잤다.


‘얼마나 아프면 잠도 잘 못 잘까’

당시엔 이런 생각조차 못했다. 나 역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었으니, 내 몸과 마음도 정상이 아니었다.

입원 3일째, 셋째는 핵의학과에서 뼈 스캔 검사를 받았다.
뼈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검사라고 했다.

48시간 동안 항생제에 반응이 없었고, 외상도 없는데 통증이 계속되자 뼈 감염(골수염)을 의심한 것이었다. 의료진들의 낯빛은 어두웠고, 말을 아꼈다.

“항생제가 반응하지 않아 수술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정형외과 의사는 “간단한 수술”이라며 안심시켰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9월 13일, 목요일.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던 수술은 2시간 넘게 걸렸다.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의 얼굴은 땀에 젖어 있었다.
뼈가 너무 약해 건드리면 금방 부러질 것 같아 예정대로 수술을 못 했다고 했다.

대신 아주 가느다란 바늘로 세 군데를 찔러 염증 물질을 빼냈고, 10리터가 넘는 생리식염수로 고관절 부위를 세척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는 단순 고관절염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감염 또는 종양세포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염증 물질로 세포검사와 배양검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다음 날, 뼈 스캔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왼쪽 고관절뿐 아니라 양쪽 어깨뼈, 오른쪽 갈비뼈까지 병변이 의심된다고 했다.

전신 MRI, 전신 뼈 스캔 검사를 또 해야만 했다.

게다가 열이 계속 안떨어져 항생제도 바꿨다. 셋째의 상태는 갈수록 태산이었다.


9월 17일, 월요일.

입원 일주일이 지났다.
검사를 할 때마다 병변은 계속 늘어나 있었다. 갈비뼈 여러 곳, 양쪽 어깨뼈까지.

진단은 여전히 없었다.
검사만 반복될 뿐, 명확히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병원과 의사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고, 마음속엔 분노만 가득 찼다.

도움을 구하려고 친정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덜덜덜 떨렸다. 눈물만 뚝뚝 떨어졌다.

오빠는 담담하게 말했다.
“울지 마라.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당장 소견서 받아서 저녁에라도 서울로 올라와라.”

통화가 끝나자마자 주치의에게 정중히 부탁드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준비된 모든 진료기록을 가지고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로 향했다.


“감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삶이 완전히 뒤집히는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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