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사설 구급차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기본적인 응급장비 외에도 제세동기, 인공호흡기, 심장충격기, 산소포화도 측정기 같은 특수 의료장비들이 빼곡했다. 어른 한 명이 간신히 누울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었고, 보호자나 응급구조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도 좁디좁았다.
계속되는 통증에 셋째는 누워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 속에서 1시간 20분을 견디는 일은 그 자체로 고통이었다. 이용요금은 생각보다 큰 금액이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지출이 컸다.
그날, 나는 시작이 이렇게 무서울 줄 정말 몰랐다. 그 좁은 공간이 내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줄 그땐 미처 몰랐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검사를 받았다. 셋째는 다른 아이들을 모두 제치고 응급 1순위였기 때문이다. 말은 없었지만, 이미 천안의 D 대학병원에서도 마지막으로 하려 했던 검사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백혈병 진단을 위한 절차였다. 세 살 아기 몸에서 나올 게 뭐가 그리 많다고 피를 그렇게도 많이 뽑는지. 발버둥치는 아이를 억지로 붙든 채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자정이 넘었음에도 응급실은 대낮처럼 밝았다. 안내에 따라 입원 수속을 마쳤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아침이 되어 절차를 밟아 도착한 곳은 신관 14층, 146병동. 입구엔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왜 우리가 이런 곳에...’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우리가 ‘병원 밖의 세상’과 작별하던 시간이었다.
오후 5시, 남편과 나는 담당 교수님과 면담을 가졌다. 전날밤 응급실에서 한 검사들과 지방 병원에서 가져온 소견서, 그리고 영상 재판독 자료들을 종합해 진단명이 내려졌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무슨 병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그 순간의 공기는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병이, 내 아이에게도 찾아왔다.
‘죽으면 어떡해...’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남편의 흐느끼는 모습을 처음 봤다.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여야 할 엄마인 내가, 아이가 이지경이 되도록 왜 아무것도 몰랐을까. 한심했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슬퍼할 틈도 없이 담당 교수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1차 항암 한 달이 전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표준 스케줄에 따라 내일부터 항암을 시작할거에요. 치료는 입원 상태에서 진행하며, 7일째, 14일째, 28일째 골수검사를 하게 됩니다.”
“이 세 번의 검사에서 백혈병 세포가 점차 줄고, 골수 속 백혈병 세포가 5% 미만으로 떨어지면 완전관해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렇게 돼야 1차 항암은 끝납니다.”
“아이 옆에서 엄마가 잘 협조해 주세요. 힘들겠지만,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문 간호사가 앞으로의 치료 계획과 주의사항을 그때그때 잘 설명해 줄 거라고 안내도 해주셨다.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은 골수에서 정상 백혈구가 악성 세포로 변해 말초 혈액으로 퍼지는 혈액암이다. 정상 혈구 생성을 방해해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간·비장·뼈·림프절을 침범하면 장기가 붓고 뼈에 통증이 생긴다. 셋째가 토하고 어지러워했던 이유, 외상이 없는데도 밤마다 아파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백혈병 치료의 기본은 항암화학요법이다. 이 외에도 방사선치료, 조혈모세포이식이 있지만, 셋째는 우선 항암화학요법만 받기로 했다.
항암화학요법은 다시 두 단계로 나뉜다. ‘관해유도요법’과 ‘공고요법’.
관해유도요법은 항암제를 투여해 백혈병 세포를 5% 미만으로 줄이고 증상을 없애는 것이 목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상태를 ‘완전관해’라고 부른다.
이어지는 단계는 ‘공고요법’.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1차에서 관해가 되어도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를 암세포를 모두 없애기 위해 꼭 필요한 처치다.
쉽게 말하면, 관해유도요법은 불이 번지지 않도록 보이는 불씨를 끄는 과정이고, 공고요법은 타고 남은 재 속의 잔불까지 완전히 꺼서 다시 불이 나지 않게 하는 과정이다.
완치만 된다면 뭐든 하기로 했다.
특히 우리가 진단받은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은 뇌와 척수로 전이되기가 쉬워 중추신경계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예방 치료도 같이해야 한다고 했다. 척수 내 항암제 투여가 그것이고 다행히 방사선치료까지는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2018년 9월 19일, 셋째는 항암에 앞서 케모포트 삽입술을 받았다.
케모포트란 항암제처럼 자극이 강한 약물을 안정적으로 정맥에 주입하기 위한 중심정맥관 장치다. 반복적인 채혈과 주사로 손상되는 말초 정맥을 대신해, 큰 정맥에 연결된 포트로 항암제가 들어갈 거라고 했다. 설명을 듣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케모포트 삽입술은 항암제로 인한 혈관 손상 방지, 혈관 확보의 어려움 해소, 장기간 치료를 위한 안정적 접근을 위해 필요한 시술이다.
그렇지만 간단한 시술이라 해도 부모 입장에선 모든 게 불안했다. 전신 마취, 오른쪽 가슴 위 일부 절개, 케모포트 삽입, 절개 부위 봉합 등 어린 아이를 수술실에 혼자 들여보내고 기다린 1시간은 고문과도 같았다.
불과 6일 전, 고관절염으로 간단한 수술이라 했지만 아이가 두 시간 넘게 수술실에 있었던 기억이 생생해 안절부절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백혈병 치료를 위한 준비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더 벌어질지,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울지 마라.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순간 오빠의 말이 또 떠올랐다.
정말 그랬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지난 일주일은 단지 전초전에 불과했다.
케모포트 삽입술과 동시에 항암이 시작되었다. 뇌척수액검사도 했다. 처음으로 열이 안나기 시작했다. 항암제 주사 한방에 백혈병 증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셋째와 나는 서울아산병원 신관 146병동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길 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제야 모든 게 다 맞아떨어졌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아팠으면 잠도 못 자고 그렇게 찡찡댔을까.
28개월 아이가 견딜 수 있는 통증이 아니었다.
그런데 밤낮으로 육아에 지친 난 아이를 다그치고, 왜 자꾸 징징대냐고 혼내기도 했다.
아이의 보챔이 전부 신호였는데, 왜 나는 그 신호를 읽지 못했을까.
그땐 너무너무 몰랐다. 아픈 아이를 더 아프게 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벌 받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이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며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다.
더이상 울지않기로 했다.
언젠가 이 시간을 돌아봤을 때, 우리가 이겨냈다고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