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간의 약속: 덱사메타손과의 첫 만남
“1차 항암 한 달이 전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백혈병 진단을 받던 날, 교수님은 이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셨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28일 내내, 단 하루도 빠짐없이 덱사메타손(Dexamethasone)을 먹였다.
그 시기의 목표는 단 하나, ‘완전관해’였다. 그것만 이룰 수 있다면, 다른 건 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다이어리에 체크하며 약을 먹였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 약은 항암제가 아니라, 매우 강력한 스테로이드라는 사실을.
약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무조건 먹이세요”라는 한마디로 모든 게 대체됐다. 망설일 틈조차 없었다. 아이를 살려야 했기에, 나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의문의 시작: 스테로이드가 항암제?
병원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문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스테로이드’를 항암의 첫 단계에 쓸까?
왜 단 하루도 빠뜨려선 안 되는 걸까?
생소했던 이름, 덱사메타손. 지난 2020년, 코로나에 걸린 트럼프 대통령이 복용하며 뉴스에 나왔던 바로 그 약이었다.
후에 의료진으로부터 들은 설명에 따르면, 28일간 이 약을 복용해야 했던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이 스테로이드는 백혈병 세포를 직접 사멸시킬 수 있는 항암 효과가 있다. 28일간의 집중 복용은 골수 깊숙이 숨어 있는 세포들까지 제거해, 조기 관해를 유도한다.
둘째, 중추신경계에 침투해 뇌척수액 속 암세포의 재발을 막는다.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세포는 뇌척수액 같은 ‘안전지대’에 숨어 있기 쉬운데, 이 약은 그런 곳까지 도달해 암세포를 공격한다.
셋째, 표준 치료 프로토콜의 핵심이다. 빈크리스틴, 독소루비신, L-아스파라기나제 등과 함께 투여할 때 관해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갑자기 끊을 수도 없고, 이후에도 서서히 용량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로소 알았다. 그 28일이 얼마나 결정적인 시간인지를.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더더욱 열심히 먹일 수 있었다.
효과와 부작용: 동전의 양면
하지만 모든 약이 효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약은 언제나 효능과 부작용이 짝을 이룬다.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 특히 항암제는 강력한 효과만큼이나 독성도 강하다. 우리는 그 효과를 얻기 위해, 부작용을 감당해야만 했다.
첫 번째 부작용: 폭발적인 식욕 증가
입원 중, 146병동에서 나는 유일하게 고기를 굽는 엄마였다. 세 살배기 아이는 어른처럼 밥과 고기를 먹었다. 2인분 같은 공기밥을 혼자 뚝딱 해치웠다. 그러다 보니 내가 먹을 밥이 없었다.
덱사메타손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는 식욕 증가. 서울 근교에 사는 오빠, 새언니, 남동생이 돌아가며 단골 정육점에서 최고급 고기를 사다 날랐다. 나는 전자레인지용 그릴에 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를 식사 때마다 번갈아 구워 먹였다.
“잘 먹는다면서요? 그게 무슨 부작용인가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암환자들은 먹지 못해 고생하는데, 잘 먹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문제는 꽂히면 그것만 먹는다는 데 있었다. 셋째는 고기와 밥 외에는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특히 부드럽고 연한 살치살을 제일 잘 먹었다. 전자렌지에 구웠을 때 가장 맛있게 구워지는 부위였다.
밥을 잘 먹는 아이의 모습이 병동 보호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마냥 기쁘지도 않았다. 약 때문에 그런 거니까.
더 무서운 부작용들
더 무서운 부작용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혈당 상승, 부종, 감정 기복이 그것이었다.
혈당이 오르면서 당뇨 위험이 커졌다. 매일 채혈할 때마다 혈당 수치를 확인해야 했다. 실제로 당뇨 진단을 받은 아이도 있었고, 우리 아이 수치도 불안했다. 얼굴은 점점 빵빵해졌다.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짜증을 내다가도 이유 없이 울기도 했다. 심지어 회진 나온 교수님께 발길질을 하거나, 인형을 던지기도 했다. 약물이 아이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흔들다니... 항암 부작용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럼에도 나는 믿었다. 잘 먹는 것이 항암을 이겨내는 길이라고. 매 끼니마다 고기와 밥을 정성껏 먹였다.
지옥의 시간: 2차 항암의 현실
2차 항암, 공고요법이 시작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공고(鞏固)’. 단단하고 든든한 느낌의 이 말은, 현실에선 지옥 같은 시간으로 다가왔다. 아이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졌다. 두 달 가까이, 단 하루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엄마, 이거 먹고 싶어.”
간절히 말해놓고도, 막상 차려주면 먹지 못했다. 아이스크림, 사탕, 초콜릿, 치킨 등 뭐든 엄청 먹고 싶어했는데, 막상 입에 넣으면 “이게 아니야.” 하며 뱉어냈다. 음식은 욕망으로만 존재했고, 현실에서는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아이는 점점 깡말랐다. 갈비뼈가 도드라질 정도였다.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웠다.
비로소 알았다. 뭐든 처음이었던 1차 항암이 가장 힘든 시기인 줄 알았는데, 1차는 이후 치료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련의 연속: 2018년 12월-2019년 1월
201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2차 항암이 끝났다. 지옥같은 시간을 버티고 맞이한 이브였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12월 27일
아이의 호중구 수치는 380. 기준인 500을 넘지 못해 골수검사가 연기됐다.
1월 3일
450까지는 올랐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교수님은 “그냥 하자”고 하셨다. 바로 그날밤, 아이의 체온은 39도까지 치솟았다. 다음날 우리는 병원 지침대로 응급실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병원의 지시를 따르는 것만이 정답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1월 7일-8일
열이 내렸다 다시 올랐다. 1월 8일, 간수치는 668(정상은 40 미만)이었다. 우루사를 먹이고 수액을 맞아도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231까지는 떨어졌지만, 여전히 위험 수치였다.
아이 몸 여기저기 두드러기 같은 이상반응이 올라왔다. 피부과에선 별다른 말 없이 아토로션만 처방해 주었다. 뭔가 이상했다.
1월 9일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저마그네슘혈증(hypomagnesemia)으로 마그네슘 주사도 맞았다. 간 기능이 떨어지면 단백질 합성이 저하되고, 마그네슘 운반 능력도 떨어진다고 했다. 또한 높은 간수치 때문에 수액을 계속 맞았는데, 이렇게 하다 보면 오히려 마그네슘 배출이 촉진되어 또 다른 문제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첩첩산중이었다.
1월 10일
밤사이 입술이 터져 피가 굳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바세린 거즈를 대주었다. 혈소판 수혈도 받았다. 처방과 처치가 점점 늘어났다. 퇴원은 하루 더 미뤄졌다.
점점 나아지는 게 아니라, 부작용만 늘어갔다. 아이 몸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와달라고, 견딜 수 없다고.
1월 11일-14일
가까스로 퇴원했지만, 이틀 뒤 다시 열이 났다. 1월 14일, 혈소판 수치 3만. 낮긴 했지만 오르고 있는 중일 수도 있어서 지켜보기로 했다.
항암은 정해진 스케줄대로 치료받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1월 4일 이후 17일간 오직 부작용 관리에만 매달려야 했다. 계속 미뤄지니 불안했다.
새로운 결심: 병원 밖의 길을 향해
의존에서 주체적 선택으로
더는 병원에만 의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병원 밖의 정보에도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무엇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어떻게 하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까?’
‘항암 부작용 완화’, ‘아이 간수치 회복’, ‘항암 중 영양 보충’ -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검색창을 들여다봤다. 면역 회복을 위한 자연적 접근에 관심이 많아졌다. 건강 관련 책들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그건 단순한 관심이 아니었다. 절박함이었다. 그 절박함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어머니로서의 각성
“내 새끼는 내가 살려야겠다.”
먹이고, 재우고, 달래고, 기도하고, 희망을 걸고, 온 마음을 다해 아이의 하루를 지켜내야 했다. 나는 엄마니까. 무엇이든 해야 했다.
병원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최선’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했다. 백혈병이라는 거대한 병 앞에서, 병원은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조언
그즈음,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2018년 1차 항암이 끝나고 퇴원해 집에 있을 때, 일본에 사시는 남편의 이모가 권했던 건강기능식품 이야기. 그땐 단칼에 거절했었다. 병원에서 하지 말라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세포를 살리는 데 꼭 필요한 성분이야. ◯◯이가 꼭 먹었으면 좋겠어.”
한때는 미심쩍게만 들렸던 말이, 점점 진심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외면했던 그 말 속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포를 살리는 성분’이라... 입원했어도 쉽게 줄어들지 않았던 간수치, 마그네슘 주사까지 맞았던 날들. 약물 부작용으로 몸 전체가 요동치고 식사 한 끼가 희망이자 절망이었던 시간들.
나는 간절히 원했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를. 단 하나라도 아이의 회복을 앞당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마음을 여는 용기
마음을 열기로 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은 병원에 대한 불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의료진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었다. 치료는 의료진이, 치유와 돌봄은 내가. 이렇게 역할을 나누어 가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병원 밖의 길’에도 한 걸음 내딛었다.
*관련 의학 정보는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치료 가이드라인과 담당 의료진의 설명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