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아이가 백혈병 투병을 시작하면서 나는 매일같이 병의 원인을 찾아 헤맸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알고 싶었다.
아프더라도 왜 아픈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인도 모르면서 내려진 진단만으로 치료를 받는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제시한 표준 치료 스케줄을 그대로 따르며 항암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를 했어도, 항암 치료는 그 각오마저 산산이 부수어 버릴 만큼 가혹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끝 모를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셋째가 가엾고 안쓰러워, 모든 게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아무리 강한 척해도, 나는 하루하루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다잡은 뒤에도, 마음은 시시때때로 흔들렸다.
그럴수록 더욱더 애썼다.
아이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영양가 있는 음식을 그때그때 부지런히 해 먹였다.
“울지 않고 항암 주사 잘 맞고, 약도 잘 먹으면, 나머지는 엄마가 다 해줄게.
엄마만 믿어. ◯◯이는 반드시 나을 거야.”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를 다독이며 스스로를 단단히 붙들었다.
그런데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법이다.
평생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고 여겼던 성경책을 내가 펼치게 될 줄이야…
2019년 4월, 어느 날 밤이었다.
우연히 『새벽에 읽는 유대인 인생 특강』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쌓으며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분명히 그들만의 비밀이 있을 터였다.
그들은 어떤 고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원칙으로 성공과 부의 상징이 되었는데, 그 정신이 바로 매일 읽는 ‘토라’ 속에 녹아 있다고 했다.
그런데 ‘토라’는 다름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 성경이었다. 그 순간, 소름이 돋을 만큼 깜짝 놀랐다.
성경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만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대인의 지혜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면, 내가 안 읽을 이유가 없었다.
책장에 꽂혀만 있고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았던, 먼지 가득한 성경책을 드디어 꺼냈다.
글투가 일상적이지 않아 어려웠다. 어떻게 읽는지도 몰라 그냥 무작정 처음부터 꾸역꾸역 읽었다.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며칠 만에 창세기를 다 읽었다.
그러고 나니 꾀가 났다. 드문드문 넘기다가 ‘요한복음’이라는 곳에서 멈췄다.
9장을 읽고있을 때였다.
갑자기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그러더니 뚝뚝뚝뚝, 마구마구 쏟아졌다.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누군가 내 속마음을 알아준다는 안도감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1절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셨다.
2절 제자들이 물었다. “랍비님,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게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3절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에게 나타내시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9:1-3, 새번역)
읽는 순간 이렇게 들렸다.
“△△야, ◯◯이가 아픈 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너의 죄도 아니고, ◯◯이 잘못도 아니야.
다만 하나님이 ◯◯이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보여주려고 그러시는 거야.”
이 세 구절 앞에서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듯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님은 교회도 안 다니는 우리에게 무슨 일을 나타내시려고…’
아이가 깰까봐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베개를 적시고도 모자라 이불까지 젖어들게 했다.
쉼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내 자신이 놀랐다.
위로란 게 이런 거였구나.
그동안 수없이 했던 속앓이와 자책이, 단 세 구절로 한꺼번에 씻겨 내려갔다.
엄마 품속에서,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던 그 손길처럼 너무나 따스했다.
수많은 책이 꽂혀 있는 책장에서 『새벽에 읽는 유대인 인생 특강』이 눈에 띈 것도,
이 책으로 인해 성경책까지 펼치게 된 것도
뜻밖의 일들이 마치 예견된 것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 내게 가장 필요했던 건 바로 이런 거였다.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기에,
어쩌면 난, 스스로 그 말을 찾아 나선 건지도 모른다.
‘아,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게 이렇게 따뜻한 거였구나.’
아이가 크게 아프면, 세상의 모든 엄마는 끝도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 죄책감은 마음을 잠식하고, 때로는 정신까지도 갉아먹는다.
‘내 탓이 아닐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끝없는 자책의 터널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 아이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 말이 꼭 나를 향한 것 같았다.
순간, 말씀 앞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쉼 없이 엉엉 울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혹은 당신 아이에게도 아픔이 있다면,
요한복음 9장 1절부터 3절을 천천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성경은 믿음을 떠나, 수천 년 동안 가장 많이 읽힌 책이다.
지난 7월 16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된 영화 <킹 오브 킹스>는 왜 흥행했을까?
개봉 19일 만에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2025년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으로 자리 잡았고, 북미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수익 약 6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한국 영화 역대 최고 흥행 성적까지 달성했다.
이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성과다.
어떻게 성경 이야기가 이 정도로 흥행할 수 있었을까?
영화 <킹 오브 킹스>는 찰스 디킨스 부자가 시간 여행을 통해 2,000년 전 예수의 삶을 직접 체험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나처럼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라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단순한 기독교적 교훈을 넘어, 부모와 자녀의 관계, 사랑과 갈등, 희생과 용서 같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이 함께 담겨 있어, 종교를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내가 요한복음 9장 1절부터 3절에서 깊은 위로를 받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말씀이 가슴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 말씀이 당신에게도 따스한 위로로 다가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치 준비된 듯, 이사야의 말씀 한 구절도 눈에 들어왔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