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선고보다 더 무서웠던 폐렴

by 홍성화

나는 세 아이를 키우며 ‘폐렴’을 그리 심각한 병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감기처럼 흔한 병쯤으로 여겼고, 우리 가족과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셋째 아이가 백혈병 치료 중 ‘폐포자충 폐렴(Pneumocystis pneumonia, PCP)’에 걸리면서, 그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2019년 10월 9일.

그날을 잊을 수 없다.

1인실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쿵쾅, 쿵쾅 병실 앞으로 다가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의료진들이 들이닥쳤고, 병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긴장감이, 그날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도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담당 교수님의 첫 질문은 이랬다.

“그동안 셉트린(Septrin)은 잘 먹였죠?”
셉트린은 폐포자충 폐렴을 예방해주는 항생제였다. 예방 효과가 무려 99.9%라고 했다.
나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0.1%의 예외가 우리 아이가 될 줄은 몰랐다.
의사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일단 가능한 모든 폐렴을 의심하며 검사가 시작됐다.

PCR 검사, 혈액배양검사, 소변항원검사에 더해 심장효소검사와 심전도까지.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아이를 보며, 혹시 심장에도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최악의 상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진은 폐렴 외에도 심장에 무리가 갔을 가능성을 고려해, 심장효소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함께 진행한 것이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알았다. 폐렴은 단지 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백혈병이 아니었다면, 우린 이 병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폐포자충은 누구나 갖고 있을 수 있는 균으로, 건강한 사람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면역이 극도로 약해진 백혈병 아이에겐 치명적인 폐렴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균이었다.


9월 23일, 집중항암이 끝나고
9월 26일부터 유지 항암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집중항암이 끝나기 약 한 달 전부터 아이의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았다.
8월 26일, 2차·4차 항암 때처럼 싸이톡산과 아라씨(Ara-C)가 투여되었고, 뇌척수액 검사와 함께 척수강 내 항암제도 들어갔다.

싸이톡산은 암세포의 DNA를 직접 파괴하고, 아라씨는 세포 복제를 방해해 스스로 죽게 만든다. 두 약물 모두 소아 급성 백혈병 치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고강도 항암제였다. 그러나 그런 만큼 부작용도 심각했다.

싸이톡산은 출혈성 방광염을, 아라씨는 열을 잘 나게 하고, 골수억제로 감염에 매우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

아침 7시에 도착해 저녁 7시까지 꼬박 12시간.

그 긴 시간 동안 병원 항암주사실에 머물며, 아이는 ‘원자폭탄’을 맞은 듯한 독한 항암을 견뎌냈다. 그런데 그날 밤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후로 혈액 수치는 오르락내리락 불안정했고, 무너진 면역은 한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콧물과 기침이 심해져 X-ray를 찍었더니 폐에 가래가 보였다.

항암을 중단하고 감기약과 항생제를 먹였다. 혈색소 수치도 떨어져 적혈구 수혈도 받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폐포자충이 아이 몸에 감염을 일으킬 ‘틈’을 노렸던 순간이지 않았나 싶다.

간수치와 염증 수치가 들쭉날쭉했고, 백혈구·혈소판·혈색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병이 정말 무서운 건, 증상이 아주 조용히, 미세하게 찾아와 조기 발견이 어렵다는 것이다.

싸이톡산과 아라씨 이후 수치는 불안정했어도 그런대로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하고 항암주사실을 비명으로 물들게 했던 근육주사도 부작용 없이 버텨냈다. 집중항암이 끝나서 이제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착각이었다.


10월 3일 아침, 체온이 39도까지 올라가 있었다.
해열제를 먹이고 나서 열이 잘 떨어진다 싶어 마음이 놓였다. 곧 정상 체온으로 돌아와 안심했는데, 10월 5일부터 다시 미열이 시작됐다.
기침은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았다. 숨을 쉴 때 쌕쌕거리는 소리가 났고, 조금만 걸어도 주저앉으려 했다.
숨을 애써 크게 들이마시려는 모습이 평소와 많이 달랐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

10월 8일, 진료 도중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아이가 숨 쉬는 게 아무래도 이상해요.

숨 쉴 때 쌕쌕거리는 소리도 나는 것 같고, 호흡을 너무 과하게 해요.”
교수님은 청진기를 대보시더니 “이상 없어요”라고 하셨다.
X-ray도 찍고 싶었는데 “필요 없을 것 같다”는 말씀에 우리는 그냥 집으로 왔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계속 찜찜했다. 혹시 몰라 입원 예약은 미리 해놓은 상태였다.
그날 저녁,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입원이 가능하다고.


10월 9일, 아침을 먹여 바로 입원했다.

입원하자마자 상황은 급변했다.

염증 수치는 빠르게 상승했고 산소포화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심박수는 치솟았고 즉시 산소 호흡기를 착용했다.

의료진은 “앞으로 24시간이 고비”라며, 살 확률이 아니라 사망 확률부터 얘기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백혈병보다 더 무서울 수 있는 병이 있다는 것을.
‘재발’이라고 들었던 날보다, 그날이 더 무서웠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어떤 싸움도 준비할 수 없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CT 촬영이 이루어졌고, 그 다음으로 기관지 내시경이 고려되었다.

기관지폐포세척액 검사(BAL, Bronchoalveolar Lavage)’라고 해서 가장 정확한 진단을 위해 필요한 표준 검사였다. 그러나 네 살 아이에게는 무리였다.

기관지 내시경으로 폐 깊숙이 생리식염수를 넣고 빨아내는 고난도의 검사로, 폐포자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네 살 아이에겐 어려웠다. 그래서 소아감염과 교수님은 ‘유도 객담 검사’를 제안하셨다.
생리식염수를 네뷸라이저로 들이마시게 해 가래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셋째는 다행히 그 기기를 장난감처럼 여기며 잘 견뎠다.

그렇게 진단이 내려졌고 치료가 시작됐다.


의료진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바람에

나는 몰래 글리코영양소를 약병에 타서 계속 먹였다.

늘 해오던 대로, 아이의 면역을 돕기 위해,

치료와 병행하며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무엇이 아이를 살렸는지, 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하지만 재발을 뒤집었을 때처럼, 나는 모든 가능성에 기대고 싶었다.

의학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선택이 아이와 나를 지탱해준 한 축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10월 12일 새벽,

며칠째 오르락내리락하던 열이 비로소 잦아들기 시작했다.

염증 수치도 조금씩 안정되어갔다.

그날 밤, 아이는 처음으로 편안하게 숨을 쉬었다.

고요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아이의 몸이 ‘회복’이라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10월 16일.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하고 숨을 헐떡이던 아이가 드디어 맨 숨으로 숨을 쉬었다.

일주일만이었다. 코 호흡기도 완전히 벗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쌩쌩해졌다. 의료진도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폐포자충 폐렴은 치료를 시작해도 회복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는데, 셋째는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회복했다.

10월 20일. 그렇게 우리는 입원 12일 만에 병원을 나왔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로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첫째, 폐포자충 폐렴은 초기 증상이 매우 미묘해서 조기 발견이 어렵다.

둘째, 기침, 숨 가쁨, 피로, 안색 변화 같은 작은 신호도 민감하게 관찰해야 한다.

셋째, 항암 중이라면 예방약 복용 여부를 매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평소와 달라요” 이 한마디가 아이를 살릴 수 있음을 명심하고 조금이라도 찜찜한 게 있다면 의료진에게 바로 알려야 한다.

그 어떤 의학적 판다보다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엄마’다.

엄마의 촉은 다르다. 나는 그 직감을 믿었고, 그 선택이 아이를 살렸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경고가, 또는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몰랐기에” 겪은 고통을, 또 누군가는 “알았기에” 피할 수 있기를.


“엄마의 직감은 청진기보다 먼저 울리는 알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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