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셋째가 항암 치료 중 고열로 밤 10시 넘어 처음으로 응급실에 달려간 적이 있었다. 두 시간 간격으로 체온을 재고, 두 번 모두 37.5도를 넘으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지침 때문이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 갔지만, 특별한 치료는 없었다. 병원에서 해준 건 채혈, 항생제 투여, 그리고 해열제 투여가 전부였다.
대낮처럼 환한 그곳에서는 아이를 재울 수도 없고, 아픈 몸을 편히 누일 수도 없었다. 응급 상황이라 판단해 갔지만, 그저 생고생으로만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위급해서가 아니라 두려움에 쫓겨 선택한 길이었다.
2022년 12월, 우리는 ‘완치’라는 이름으로 서울아산병원 소아암 커뮤니티 ‘146 한울타리회’로부터 완치자 메달과 선물을 받았다. 셋째가 백혈병과 싸워 이겨냈다는 증거였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기쁨에 셋째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마냥 기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투병 내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미안함이 고개를 들었다.
첫째, 둘째와 다르게 셋째는 감기에 자주 걸렸다. 콧물이 흐르고, 기침만 살짝 해도 소아과로 바로 달려갔다. 감기약과 항생제, 해열제를 아무 의심 없이 먹였다. 소아과에서 처방해 준 것이니까, 당연히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것이 ‘엄마로서 바른 역할’이라 생각했다.
아이 셋을 돌보고 대식구 살림에 치인 나는, 병원을 마치 일상의 한 부분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 안일함은 결국 ‘무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셋째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직후, 나는 원인을 찾고 싶어 여러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중 『감기에서 백혈병까지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해열제 사용이 면역 교란, 백혈구 기능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접했을 때,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쉽게, 너무 자주 해열제를 먹인 것이 셋째의 병과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나만의 추측일 뿐이고, 백혈병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런 의심은 나를 깊은 죄책감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열에 대해 공부했다. 자연치유, 면역학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조금씩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21년 초부터는 조심스럽게 해열제 사용을 멀리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확신을 얻어갔다.
『감기에서 백혈병까지의 비밀』은 해열제의 무분별한 사용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열을 무조건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서도 안된다고 했다.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열도 적이 아니었다.
열이 나는 것은 몸이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이 제 역할을 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 과정을 인위적으로 차단할 때, 아이의 몸은 치유의 기회를 잃을 수 있다.
2023년 7월 12일 밤 10시 15분, 셋째의 이마가 또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틀 전부터 기침을 하고 있었고, 감기 기운이 있는 상태였다. 왼쪽, 오른쪽 겨드랑이 체온이 모두 39.9도였다. 그 순간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무턱대고 해열제부터 먹이지는 않았다.
조한경 의사의 『환자혁명』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발열은 보통 38.4도에서 40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41.5도가 넘어가면 뇌에 영향을 끼치지만 대부분의 경우 41도를 넘지 않는다.” 실제로도 그랬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38도만 되어도 즉시 해열제를 먹였을 것이다. 옷도 모두 벗겨 체온을 내리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나는 다이어리에 아이 체온을 먼저 기록하고 해열제가 아닌 라벤더 오일 뚜껑을 열었다.
미지근한 물에 라벤더 오일을 떨어뜨려 수건을 적시고, 이마, 얼굴, 목, 겨드랑이, 팔꿈치 안쪽, 무릎 뒤, 손바닥, 발바닥, 몸통을 순서대로 여러 번 닦아주었다. 그리고 이불을 목까지 덮어 준 뒤 열이 떨어지는지, 더 오르지는 않는지 지켜봤다.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때는 페퍼민트 오일을 추가해 같은 방법으로 몸을 닦아준다. 라벤더와 로만캐모마일, 프랑킨센스 오일을 코코넛 오일에 섞어 등 마사지도 해준다. 백혈구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열을 내리는 효과도 있다.
그날 아이의 몸은 또 한 번 바이러스와 전투 중이었다. 오한에 떨고 있는 아이를 보며 안쓰러웠지만 나는 이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엄마가 옆에서 지켜줄 테니까 싸워서 꼭 이겨.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 너는 할 수 있어. 엄마는 우리 ◯◯이 믿어.”
밤새 1시간 간격으로 계속 체온을 재고 뜨거운 밤을 아이와 함께 견뎠다. 아이의 이마를 수시로 짚어보고, 빠르고 거친 숨소리도 지켜보았다. 해열제처럼 빨리 내리지는 않았지만 열은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틀 밤을 지나 아이는 말끔히 회복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몇 번은 중간에 마음이 흔들려 해열제를 먹인 적도 있었고, 열이 쉽게 안 떨어진다 싶으면 병원 약에 의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언제 지켜볼 수 있고, 언제 약을 먹어야 하는지 조금씩 감을 익혀갔다.
해열제를 먹이면 간단하고 편한데 굳이 왜 유난을 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선택에 달려있다. 나는 엄마다. 아이의 면역을 길러줄 책임이 있는 엄마다.
그래서 평소에 나는 해열제를 ‘쉽게 닿지 않는 곳’에 둔다. 혹시라도 겁에 질린 내가 무심코 손을 뻗을까 봐서. 아이의 이마가 뜨거워지는 순간, 나도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번엔 해열제를 먹여야 하나’ 갈등하며 흔들리지만, 결국 마음을 다잡는다.
그 의도적인 거리감이 내게 ‘지켜보는 힘’을 길러주었다. 많은 부모가 열이 나면 가장 먼저 ‘뇌 손상’을 떠올린다. 그래서 38도만 넘어도 불안해하고, 해열제를 먹인다. 하지만 41.5도를 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열은 해로운 것이 아니라 회복의 신호이자, 몸의 면역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이는 나만의 개인적인 경험과 선택이다. 모든 상황이 같을 수는 없고, 각자의 여건과 아이의 상태에 따라 다른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한 번 믿기 어려웠던 것이 경험 후에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현대의학이 권하는 대로 열이 나면 옷을 벗기고 해열제를 먹이는 대신, 이불을 덮어주고 미온수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주며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 우리 몸의 면역과 항상성을 믿고 지켜보는 것이 때로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을 대하는 엄마의 자세는 억제하는 힘이 아니라, 기다리는 힘이다. 약을 주지 않는 고집이 아니라, 아이의 몸을 믿는 용기다. 그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수많은 밤을 견디고, 수많은 불안을 넘어선 뒤 비로소 얻어낸 힘이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열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아이가 자기 몸으로 싸워 이겨내는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그 시간을 함께 숨 쉬며, 조용히 곁을 지키는 것. 그것이 진짜 엄마의 자세가 아닐까. 그래서 그 믿음을 실천한 모든 순간이 아이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선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각자의 상황과 아이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의료진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