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중심을 세우다

선택의 주권

by 홍성화

책을 좋아하긴 했어도, 건강 관련 책에는 특별히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러나 셋째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아픈 아이를 돌보며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팠다.

짧은 시간 동안 마흔 권이 넘는 건강 도서를 읽었다.

만약 내 아이가 큰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건강 주권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그전까지 나는 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고, 의사의 말을 따르는 게 최선이라 여겼다.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아프면 곧장 병원에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셋째의 투병은 내 생각의 틀을 하나씩 하나씩 부수었다.




건강과 관련된 책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혼란스러웠다. 때로는 화도 났다. 책마다 말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항암치료에만 매달리고 있는 내게, 현대의학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말하는 책들은 큰 혼란을 줬다.
어떤 책은 항암제를 발암물질 덩어리, 독극물이라 했고, 또 어떤 책은 해열제의 부작용을 낱낱이 까발렸다.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해열제를 아주 위험한 약이라며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누군가는 병원을 떠나 자연으로 가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요가와 단식, 아유르베다 같은 전통의학을 적용해 자신을 살렸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현대의학, 대체의학, 보완의학, 통합의학, 전통의학, 한의학 등. 의학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낯선 용어와 개념들이 나를 더 깊은 혼란에 빠뜨렸다.

현실, 이론, 그리고 엄마의 감각이 충돌하며 내 안을 헤집었다.

지식은 혼란을 주었고, 경험은 중심을 잡고 싶어 했다.

나는 어떻게든 내 아이를 살리고 싶었고, 절박함 하나로 중심을 잡아야 했다.

골든타임이 중요한 병원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제때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체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현대의학이 중심이었지만, 나는 엄마였기에, 쫄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내 아이의 치유에 관여하기로 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책을 읽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며 비판적인 시각을 키울 수 있었다. 더불어 건강 주권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도 얻었다.
결국 나는 혼란 속에서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며 나만의 치유 방식을 만들어갔다.




서울아산병원을 다니며 3년 4개월 동안 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를 받았다. 그러면서 세포를 건강하게 하고 면역을 돕는 글리코영양소도 꾸준히 먹였다.
항암으로 떨어지는 체력을 보완하고 자연 면역 회복을 돕는 방식이었다.
열이 난다고 해서 무조건 해열제부터 먹이지도 않았다.

감기로 열이 나면, 라벤더와 페퍼민트를 떨어뜨린 미지근한 물로 수건을 적셔 온몸을 닦아주었다. 진정, 쿨링, 항염 효과를 믿으며 아이의 몸을 살폈다.

아로마테라피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부터도 나는 라벤더, 티트리, 페퍼민트 같은 기본 오일들은 상비약처럼 사용해 왔다.

사용법을 지키면서 꾸준하게 대체요법을 일상 안에 스며들게 했다.
감기로 힘들어할 땐 생강·대추·파뿌리차를 끓여 물처럼 수시로 먹이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에 ‘몸은 스스로 낫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단지 암이 낫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아프기 전처럼 삶 전체가 온전해지길 바랐다.

셋째가 어렸음에도 투병기간 내내 나는 이렇게 말했다.
“병원에서 해야 하는 채혈과 항암 주사는 엄마도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

그렇지만 나머지는 엄마가 다 해줄게. 엄마만 믿어. 알았지?”
눈을 맞추며 진심을 담아 말해주었다.

매일 밤 이불속에서 셋째가 모은 두 손을 내 손으로 감싸며 다음과 같이 기도도 했다.

“하나님, 우리 ◯◯이 꼭 건강하게 해 주세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그랬던 시간이 쌓여, 나는 한 가지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치료는 기술이고, 치유는 태도라는 것을.

그리고 그 태도는 삶의 선택 위에서 자란다는 것도 깨달았다.

셋째의 투병을 지켜보며 한 가지 의학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급할 때는 반드시 병원으로 가는 게 맞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아무리 좋은 치유법도 후회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균형을 잡았다.

병원의 말, 책의 주장, 자연요법들 사이에서 내 감각, 아이의 몸, 우리 삶의 맥락에 스스로 묻고 답했다.

현대의학은 빠르고 강력하다. 급한 불은 병원에서 꺼야 한다.
그러나 병이 정말 사라졌는지는 우리 집 식탁에서, 잠자리에서, 그리고 마음의 평온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의학, 보완의학, 통합의학, 전통의학, 자연치유, 해독, 호흡, 명상, 기도…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건강에 대한 내 신념을 변화시켰고, 셋째의 삶도 지켜주었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았다. 그것이 근본 치유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올해로 셋째는 완치 판정을 받은 지 3년째다. 지금은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다니고 있다.
병원에 가는 날에도 어김없이 면역에 좋은 블렌딩 오일을 셋째의 손바닥에 한 방울 떨어뜨리며 말한다.
“향을 맡아봐. 그리고 깊게 숨 쉬기를 세네 번 반복해.”
그런 다음 목 뒤와 귀 뒤에 문지르게 하고, 나도 같은 루틴으로 한다.


부모가 아픈 아이를 돌볼 때에도, 철학이 없으면 쉽게 흔들린다.
어디에 중심을 둘 것인가는, 단순히 의학의 선택을 넘어 ‘어떻게 살고 싶은가’와도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제 흔들림 속에서도 기준을 세울 수 있다.

흔들렸지만 쓰러지지 않았고, 중심을 잡았기 때문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가가 아니라, 지금 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묻고 선택하는 게 진짜 ‘건강 주권’이고 ‘선택의 주권’이다.


“모든 방향이 길일 수 있다. 그러나 중심은 내가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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