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코로나 때문에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이 미뤄지고 있었다.
셋째의 외래 진료 간격도 2주로 늘어나면서, 1년 5개월 만에 셋째와 나는 드디어 우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의 빈자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집은 정신없었고, 매일이 전쟁 같았다.
그런데도 좋았다.
바쁘고 지쳐도, 내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했다.
늘 마음에 걸렸던 첫째, 둘째와도 다시 살 맞대고 지낼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와야 했던 ‘그날’이 오지 않았다.
며칠은 그냥 넘겼다. ‘요즘 너무 힘들었잖아.’ ‘피곤해서 그럴 거야.’
늘 그렇듯 내 몸은 언제나 다음 순위였다.
하지만 1주, 2주가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여자의 달’이 오지 않았다.
생리라는 단어보다 나는 이 말이 더 좋다.
몸이, 달처럼 주기적으로 나를 돌아봐주던 시간.
기분이 가라앉고, 어딘가 모르게 무거워지고, 자유롭지 못한 날들.
그 모든 불편함 속에도, 생명력을 품은 시간.
그 소중한 순환이, 마흔의 봄날, 조용히 멈춰버렸다.
처음엔 ‘며칠 더 있으면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신도 아닌데 계속 기미가 없자,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2020년 3월 28일, 초음파 검진 결과 머릿속이 하얘졌다.
“자궁 내막이 많이 두꺼운 상태입니다. 평균보다도 1.3cm가 더 두꺼워요.”
“지금이라도 생리를 하면 괜찮은데, 예정일에서도 벌써 20일이나 지나 있고…”
“이 상태로는 내막이 무너질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암 전 단계일 수도 있으니 소견서를 써드릴게요. 당장 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저 일상이 돌아왔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인데, 이번엔 내가 문제였다.
삶이란 참,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임신과 출산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생리를 거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 몸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었는데, 괜히 마흔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는 순간, 셋째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우리 ◯◯이… 지금이 어떤 때인데.
‘◯◯이 다 낫기 전까지는, 나는 아프면 안돼. 절대 안돼!’ 라고 생각했다.
“선생님, 조금만 더 지켜보면 안 될까요?”
셋째 이야기를 꺼내며 조심스레 여쭤봤다.
결국 피검사와 냉검사를 한 뒤 두 달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셋째에게 먹이고 있던 글리코영양소를 나도 정신없이 퍼먹었다.
물도 없이 목이 막혀도, 그냥 미친 듯이 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유일한 의지이자 희망으로.
그런데 기적처럼, 글리코영양소를 먹은 지 3일째 되는 날, 피가 비쳤다.
그날 저녁부터 수돗물 틀어놓은 것처럼 생리혈이 마구마구 쏟아졌다.
멈췄던 내 몸의 정교한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49일 만에 돌아온 ‘여자의 달’. 됐다. 됐어.
그 후 6일 동안 평소처럼 생리를 했고, 두 달을 지켜보는 동안에도 26일 주기로 월경을 이어갔다.
생리가 끝날 때마다 산부인과에 갔다. 초음파 결과에서도 자궁 내막 두께가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몸은 정직했다. 그리고 놀랍도록 섬세했다.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라는 책에 따르면,
여성의 생리 주기에 관여하는 호르몬만도 다섯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 모든 호르몬이 정교하게 균형을 이뤄야만 우리는 매달 생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만 어긋나도 생리는 멈춘다.
나는 그 신비를 몰랐다. 그저 당연하게만 여겼다.
나를 성실히 찾아오던 ‘여자의 달’을, 건강하게 생리하던 내 몸을, 고마워할 줄 몰랐다.
주변에서 생리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이야기,
호르몬제를 먹어야 겨우 생리를 한다는 이야기,
PMS로 우울증까지 겪는다는 이야기까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여성의 문제를 모두 남의 일처럼 여겼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내 몸이 제 역할을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뼈저리게.
여성의 몸은 단순한 장기들의 조합이 아니다.
기억하고, 감정 짓는 유기체다.
자궁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네 몸을 밀쳐두지 마.
너도 돌봄이 필요해.
너도 사랑받아야 해.
이제 나는 그 말을 듣는다.
이제 나는 내 자궁과, 내 몸과, 내 삶과 다시 대화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나의 자궁아.
셋째만 돌보다가 너를 돌보지 못했어.
오랫동안 침묵 속에 긴장하게 했고,
그걸 다 받아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내가 밤마다 숨죽이며 흘렸던 눈물과 잠 못 든 시간들,
너는 다 기억하고 있었지. 그래서 아팠던 거지.
이제는 안다.
몸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