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어느 날, 서울 아산병원 신관 1층.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유모차를 대여해 셋째를 앉혔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보일 때까지 그저 조용히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증상이 반복되었고 몇 분씩 지속되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서울 병원으로 옮기기 전, 셋째는 고관절염 수술을 받아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프기 전에는 기저귀도 뗐었는데 수술 이후 다시 찰 수밖에 없었다.
항암 스케줄에 따라 주 4일을 학교 다니듯 병원에 다녔고, 그때마다 아이를 안고 다녀야 했다. 유모차를 빌리지 못한 날에는 가방과 아이 무게로 체력이 바닥났다.
29개월, 세 살 아기라지만 엄마들은 안다. 아이가 아무리 작아도 계속 안고 다니면 몸이 얼마나 지치는지를.
진료 과정은 늘 비슷했다.
도착하면 일단 소아 채혈실로 가서 피를 뽑고, 결과가 나오면 외래 진료를 본 뒤 3층 항암 주사실로 올라가 기다렸다. 항암제가 도착하면 주사를 맞고, 이후 병원 근처 약국에 들러 처방받은 약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집에 돌아오면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나 있곤 했다.
하루의 중심은 온전히 셋째 돌봄에 맞춰져 있었다. 내 몸을 챙길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셋째를 위해 늘 종종걸음으로 쉴 새 없이 움직였기에, 정작 내 안에 ‘나’는 없었다. 그래서 몸이 망가져 가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혈병 진단 후 항암 치료가 시작된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둘째 시큰어머니께서 병문안을 오셨다. 면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큰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야, 혹시… 임신한 건 아니지?” 당시 내 배는 누가 봐도 임신 7개월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몸이 힘들다거나 어지럽다는 자각증상은 없었다. 아마도 못 느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셋째의 투병은 그렇게 그나마 있던 나의 여유조차도 송두리째 앗아간 상태였다.
육아와 대식구 살림에 아무리 지치고 시간이 부족해도, 그전까지는 그래도 나름대로 몸을 관리했다. 규칙적인 식사는 물론 운동까지. 아이들이 낮잠 자는 시간을 활용해 줄넘기, 제기차기, PT 체조, 스쿼트, 스트레칭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면 뭐라도 꼭 했다. 그러나 셋째가 아픈 뒤로는 틈틈이 했던 운동마저도 하기 어려워지면서 차츰차츰 그렇게 내 몸은 망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아픈데 엄마까지 아프면 안 될 일이다. 병원에 혼자 갈 시간도, 검사받을 용기도 없었다. 정말 뭐 하나에라도 걸리면 셋째는 누가 돌보나.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다간 나도 무너진다는 것을.
조금 과장일 수도 있지만, 요즘은 병원에 다니지 않거나 약을 전혀 먹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약을 밥 먹듯 먹는 삶이 과연 ‘진짜 치료’일까? 건강을 위해 먹는 약이 오히려 삶을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현대 사회에서 나이 불문하고 당뇨 전단계는 이제 너무 흔하다.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당뇨병, 고지혈, 고혈압, 치매, 파킨슨… 약 없이 사는 사람이 드물다. 이게 과연 정상인가? 현대 의학이 꼭 필요한 순간에는 치료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무작정 의사에게 몸을 맡기고 약에만 의존하는 삶은 진정한 치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고쳐보겠다는 결심이었다.
1차 항암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격렬했던 2차 항암 치료. 셋째는 부작용을 온몸으로 겪었고, 나는 그런 아이를 살리기 위해 글리코영양소를 먹이기로 했다. 항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세포들끼리 ‘서로 말이 잘 통하게’ 도와 면역을 조절해 준다는 글리코영양소였다. 그러나 아무런 맛이 없다 보니 셋째는 요와 이불, 방바닥 여기저기에 뱉어내기 일쑤였다. 어떻게든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아이와 50여 일을 씨름했다. 항암 치료가 심한 날에는 항구토제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다.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토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날에는 타 놓은 것이 아까워 내가 대신 먹곤 했다. 그러던 중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2019년 6월 1일,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전날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듯 스치기만 해도 살이 아팠다. 나는 일어나려다 그대로 주저앉아 헛구역질을 하고 여러 번 토했다. 쓰러지듯 그대로 누워 2~3시간을 내리 잤다. 눈을 떠보니 이상하게도 안 어지러운 것 같았다. 아픈 느낌도 덜했고 쑤시던 것도 사라졌다. 처음 겪어보는 요상한 경험이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것이 바로 호전 반응이었다는 것을. 특히 당뇨병인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기도 했다. 순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내 몸 어딘가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문득 ‘이렇게 반응이 온다면, 근본적인 치료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바로 그 당시 밤마다 읽고 있던 책 중 하나도 『Clean』이었다.
2차 항암 때부터 오빠 가족의 배려로 병원 근처 오빠네 집에서 지내게 되었고, 우리는 첫째 조카의 방을 썼다. 그때 책꽂이에서 꺼내 든 책이 알레한드로 융거의 『클린(Clean)』이었고, 건강에 몰두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게 빠져들었다.
『클린』은 다이어트를 말하는 책이 아니다. 우리 몸의 회복과 재생에 관한 철학이 담겨 있는 책이다. 가공식품, 환경오염, 스트레스, 약물 등 우리는 매일 독소를 쌓아가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독소가 만성 질환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였다.
알레한드로 융거 박사는 이 책에서 특히 장 건강과 디톡스를 강조했다. 소화에 부담을 주지 않는 식단으로 장을 쉬게 하고 정화함으로써 몸의 자연치유력과 면역력을 회복시키는 길을 제시했다. 21일간의 클렌징 식단과 생활 가이드를 통해 몸의 리듬을 다시 찾게 돕는다. 일시적으로 체중만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회복과 치유를 위한 새로운 루틴’을 만드는 것, 그것이 『클린』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나는 『클린』을 읽으며 자연스레 ‘대청소’를 떠올렸다. 대청소란 눈에 보이는 곳만 치우는 게 아니라, 구석구석까지 말끔히 비우고 정리해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일이지 않은가. 몸도 그렇다.
따라서 클린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새롭게 리셋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마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오류가 났을 때 껐다 켜듯, 우리 몸도 주기적으로 그런 리셋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내 몸을 반드시 고쳐내겠다고. 그리고 그 결심 위에 글리코영양소를 얹었다. 그것이 바로 ‘글리코 클린’이다.
글리코영양소의 효능과 구체적 활용법은 다음 꼭지에서 다룰 것이고,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클린은 영양소를 보충하는 일이 아니라 몸 전체의 시스템을 재정비한다는 관점이었다. 따라서 ‘글리코 클린’은 엄마인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린, 절박하면서도 철학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앞으로 이어질 35일간의 여정으로 나를 이끌어갔다.